[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뉴진스’ 등이 속한 하이브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K-팝의 인기에 더해 엔데믹 이후 소비심리 회복 등에 힘입어 엔터테인먼트와 호텔·관광, 의류 기업 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2차전지 소재 전문기업인 에코프로는 지난해 처음 대기업집단에 진출한 데 이어 올해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에 포함됐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의 모습 [연합] |
쿠팡과 두나무는 실질적 총수가 동일인 지정을 피해갈 수 있는 ‘예외요건’을 모두 갖추면서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다.
공정위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작년 말 기준) 공시집단으로 지정·통지한 대상은 88개로 작년보다 6개 늘었다. 이들 집단에 소속된 회사는 3318개로 같은 기간 242개 증가했다.
신규 지정 공시집단은 하이브, 소노인터내셔널, 원익, 영원, 파라다이스, 현대해상화재보험, 대신증권 등 7개다. 이들은 내달 1일부터 공시·신고의무,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등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7월 지정 제외됐다.
신규 지정집단의 전년 대비 자산총액 증가 현황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
공정위는 K-팝의 세계화와 엔데믹 이후 소비심리 회복, 외국인 방한 수요 증가 등으로 엔터테인먼트, 호텔·관광, 의류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했고 이에 따라 공시집단 수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추세 속에 전체 공시집단의 공정자산 총액도 3074조3000억원으로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섰다.
하이브는 공정자산 총액 5조2500억원으로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에서는 처음 지정됐다. 최대주주이자 설립자인 방시혁 의장은 동일인(총수)로 지정돼 사익편취 금지 등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등 유명 의류 브랜드의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OEM)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영원도 포함됐다. 카지노·광업 주력집단인 파라다이스, 호텔·관광업 주력집단인 소노인터내셔널 등도 새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회계기준상 보험부채 평가방법이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되면서 보험주력집단의 공정자산 증가도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지정 제외됐던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올해 재지정됐다. 교보생명보험, DB 등 보험업 주력 집단의 재계 순위가 올라갔고 삼성, 한화 등 주요 보험사를 보유한 기업집단 역시 공정자산이 증가했다.
올해부터 상출집단 지정기준은 기존 10조원에서 명목 국내총생산액(GDP)의 0.5%(10조4000억원)로 변경됐다. 상출집단은 공시집단에 적용되는 공시 의무·사익편취 금지 규제에 더해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규제를 받는다.
지난 3월 열린 ‘2024 인터배터리’에 설치된 에코프로 부스 내부 [헤럴드경제DB] |
이번에 상출집단으로 지정·통지된 집단은 48개로 전년과 같았고, 소속회사는 2213개로 전년보다 44개 증가했다. 에코프로, 교보생명보험은 신규 지정됐고, 한국앤컴퍼니그룹(구 한국타이어)과 대우조선해양은 지정 제외됐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처음 공시집단으로 지정된 데 이어 올해 순위(62→47위)가 올라가면서 상출집단에도 들어갔다. 자산총액 기준 상향으로 한국앤컴퍼니그룹(10조3800억원)은 상출집단에서 공시집단으로 전환됐다.
공정위는 상출집단에 이어 공시집단 지정기준도 GDP에 연동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 규모의 증가와 정책여건 변화, 상출집단 기준과의 정합성 등을 고려해 GDP에 연동하는 걸로 방향을 잡고 있다”면서 “지정기준이 상향되면 사익 편취 규제 사각지대의 우려가 있는 만큼 GDP의 몇 %로 할 건지 등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범위와 대기업 규제 적용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이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들을 기업집단으로 묶어서 관리·감시한다.
올해는 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동일인 판단기준 및 확인절차에 관한 지침’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예외요건을 신설한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쿠팡 창업주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2021년 3월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
구체적으로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동일하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는 경우 등을 예외요건으로 설정했다.
이번에 쿠팡과 두나무는 해당 예외요건을 모두 충족해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총수 대신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김범석 쿠팡 의장과 송치형 두나무 의장은 공정거래법상 자연인에게 적용되는 사익편취 등에 대한 감시를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정위는 특정 기업 ‘봐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특정 기업집단의 이해에 따라 시행령 개정이 추진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쿠팡과 두나무의 경우 향후 예외 조건 충족 여부와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집단 동원의 동일인은 김재철 명예회장에서 그의 아들인 김남정 회장으로 변경됐다.
한 해 만에 재계 순위가 열 계단 이상 올라간 기업집단은 셀트리온(19→32위), 쿠팡(27→45위), DB(35→48위), 교보생명보험(39→53위), 에코프로(47→62위) 등이었다. 2차 전지와 온라인 유통 등 신산업 성장,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보험사의 공정자산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연도별 공시집단 계열회사 수 추이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 상위 5개 집단의 순위는 작년과 변동이 없었다. 전체 공시집단 자산총액에서 이들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48.7%로 전년(50.5%)에 이어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매출·당기순이익만 보면 각각 52.4%, 64.8%를 차지했다.
올해 지정된 공시집단의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은 1979조1000억원에서 1907조3000억원으로 3.6%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115조2000억원에서 98조9000억원으로 14.2% 줄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매출액이 늘어난 기업은 현대자동차(+34조7000억원), 한화(+10조8000억원), 쿠팡(+8조원) 등, 당기순이익이 증가한 기업은 현대자동차(+9조원), 삼성(+4조7000억원), 쿠팡(+2조2000억원) 등으로 파악됐다. 계열회사 수는 SK(21개), 한화(12개), 현대자동차(10개) 등의 순으로 많이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