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혁명의 시대…안방에서 카네기홀 같은 경험”

음향감독 리처드 킹은 최근 서울 서초구 사운드360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음향기술의 발달로 카네기홀에 가지 않아도 그곳에 있는 듯한 경험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임세준 기자

미국 뉴욕 카네기홀, 독일 베를린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일본 도쿄 산토리홀…. 콘서트홀은 ‘제2의 악기’로 불린다. 의자의 디자인과 크기는 물론 콘서트홀을 만든 모든 것이 음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가 가본 공연장 중 최고의 음향을 꼽자면 카네기홀이 첫 번째예요. 카네기홀의 나무와 장식 등 건축학적 요소가 좋은 음향을 만들죠. 하지만 이젠 카네기홀에 가지 않아도 그 공간의 음향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세계적인 톤마이스터(소리를 뜻하는 ‘톤’과 장인을 뜻하는 ‘마이스터’의 합성어) 리처드 킹(65·캐나다 맥길대 교수)은 지난 몇 년 사이의 녹음 기술 발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음향 혁명’ 시대가 왔다. 왼쪽 귀에서는 현악기의 유려한 선율이, 머리 위에서는 100여 명 합창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의 팔색조 음색이 입혀진다. 최고의 클래식홀에 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연주한 것과 같은 음향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한 경험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사운드360에서 만난 킹은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항상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카네기홀에서 녹음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서 녹음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술력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첼리스트 요요마 등 세계 최정상 클래식 음악가의 음반을 작업,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그라모폰(그래미 트로피)을 16번이나 받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사운드 엔지니어다. 최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아이리스연구실이 주관한 몰입형 녹음 기법에 관한 국제 워크숍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3D(3차원) 사운드는 오랜 화두였다. 지난 수십년 사이 3D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구축되고, 콘텐츠가 생산되고, 애플 뮤직과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3D 사운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용어는 다르지만 3D사운드, 입체음향, 공간음향, 이머시브 사운드(Immersive sound)는 비슷한 개념이다. ‘공간감을 살린 입체적인 소리’로 이해하면 쉽다. 우리집 안방에서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실감나는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것이다.

킹은 “더 높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머시브 사운드는 포괄적인 개념”이라며 “실제 연주자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음향기술은 지난 70여 년간 진화에 가까운 발전을 이뤘다. 축음기에서 듣는 것처럼 하나의 채널에서만 소리가 나오는 모노 시대(1950년대)를 거쳐 좌우 두 개 채널로 분리한 스테리오(2D) 시대(1960~1970년대), 이후 5개 이상 채널을 활용해 소리에 둘러싸인 청취 경험을 주는 서라운드 시대를 거쳐 지금에 왔다.

킹이 이머시브 사운드를 처음 접한 것도 1991년 즈음이다. 서라운드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학생 시절이던 당시 다섯 개의 채널로 서라운드를 시작했고, 이듬해 소니뮤직의 엔지니어로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음향 작업에 뛰어들었다.

3D 사운드의 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지만 알맞은 공간과 고가의 스피커가 없다면 온전한 음향을 듣기가 쉽지 않다. 다만 지난 몇 년 사이 3D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는 스피커와 헤드폰이 속속 등장하며 MZ세대를 중심으로도 음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업계에선 “헤드폰 시장과 3D, 이머시브 사운드의 성장은 함께 가고 있다”고 본다.

킹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향은 청취 환경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바탕하고 있다. 그는 “소비자들이 어떤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가능하면 플랫(flat)한 상태의 음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상적인 음향은 지나치게 밝지도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겁지도 않은 음향”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사운드 철학 역시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음향을 만드는 것”이다.

“10여 대의 스피커를 집에 두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몇 천만원 짜리 스피커로 들어도, 10만원대의 이어폰으로 들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사운드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고 있어요. 그 차이를 줄이도록 작업 과정에서 가장 최상의 상태부터 단계별로 음향을 확인하며 다듬고 있어요.”

킹이 작업한 요요마, 피아니스트 엠마뉴엘 엑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베토벤 트리오 앨범에서는 그가 직접 개발한 이머시브 녹음을 위한 기법이 모두 투영됐다. 2022년 미국 보스턴 탱글우드에 있는 세이지 오자와 홀에서 녹음한 음반이다. 그는 “스피커와 마이크를 일대일로 매칭한 뒤, 전체 공간을 캡처하고 작은 소리가 나는 악기에는 더 가까이 마이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사운드 디자인을 했다”고 말했다. 전체를 설정한 뒤 세부적인 요소를 다듬는 방식이다.

세 사람의 앨범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트리오로 편곡한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각 악기의 깔끔하고 단정한 소리가 선명하게 담겼다. 킹은 “전체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트리오만을 위한 마이크 기법도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30여 년간 톤마이스터로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는 그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국내 음향업계 종사자는 물론 미래의 톤마이스터들을 만나 마스터클래스와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기술와 헤드폰 시장의 발전으로 3D 사운드를 다루는 톤마이스터를 유망한 직종으로 보고 있다.

“톤마이스터는 길잡이”라고 말한 킹은 “톤마이스터가 지나치게 개입해 음악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연주자의 음반을 보면 정면에는 연주자의 얼굴이 있고, 뒷면에 톤마이스터의 이름이 있는 것만 봐도 직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연주자가 원하는 것을 읽어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제안하는 조력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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