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The Silent Observer’(2024년작), ‘Possibilities Untouched by the Mind’(2024년작)이 배치된 지하 2층 전시장. 이정아 기자.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달이 뚝 떨어진 걸까. 달은 기둥 사이에 받쳐 둔 그물망에 대롱대롱 걸렸다. 땅과 한층 더 가까워진 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어느 밤, 순도 높은 선명한 ‘울트라마린’ 색상의 나뭇가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비버들이 익살스러운 행동을 한다. 마치 새벽녘 곳곳에 숨겨둔 숲 속 비밀이 깨어나는 듯, 현실인지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오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마치 동화 속 초현실적인 세계에 던져진 것만 같은, 이 기이한 광경은 도산대로가 가로지르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갤러리 송은 지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활동한 스웨덴 출신 작가 듀오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전시 ‘문명의 대지 아래, 숨 쉬는 비밀(Beneath the Cultivated Grounds, Secrets Await)’이 개막했다. 뒤버그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2009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Get Close To Each Other and Stick Together(Gold)’(2024년작)이 놓인 1층 로비. [갤러리 송은] |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송은이 가진 공간적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이 제작되고 전시가 구성된 점이 특별하다. 작품을 단편적으로 나열한 전시가 아니라는 의미다. 뒤버그의 조각과 애니메이션이 갤러리 1~3층에 이어 지하 전시장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또 순환된다. 이와 함께 한스가 제작한 사운드가 각 작품이 만들어내는 장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순간마다 덧입혀졌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작가들의 예술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뒤버그는 “내 작품은 완벽하지 않다”면서 “그런데 이런 취약성이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술은 작업과정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 출신 작가 듀오인 나탈리 뒤버그(왼쪽)와 한스 버그. [갤러리 송은] |
실제로 그의 작품은 우화적인 방식으로 비튼 블랙코미디 같다. 위트 있지만 불쾌하고,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반대되는 개념이 공존할 때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기괴하다.
‘스톱모션’(Stop Motion) 방식으로 제작된 5~6분 내외의 영상 애니메이션 3부작이 대표적이다. 영상 속 늑대의 꾀임에 넘어가 잡아먹히게 된 달걀이 달로 둔갑하는가 하면, 휘엉청 뜬 달이 암퇘지를 탐하는 늑대를 보고도 무기력하게 체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기자기한 배경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미묘하게 어긋난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복잡한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서사는 이렇다 할 결말이 없다. 이는 피하고 싶은 무의식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스톱모션 영상 애니메이션 3부작이 배치된 3층 전시장. [갤러리 송은] |
특히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인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의 나선형 설계 구조가 돋보이는 갤러리 송은의 지하 공간은 이 전시의 백미다. 마치 우물처럼 보이는, 텅 빈 공간에 놓인 거대한 달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예술적이다. 이에 대해 한스는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라다재단의 지원을 받는 뒤버그는 지난 2009년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인전을 위해 당시 한국에 방문했다. 이번 전시는 15년 만에 여는 그의 두 번째 국내 전시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