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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피해자가 임신한 줄 몰랐나요?”, “네. 몰랐습니다.”
임신 7개월차 전 부인을 살해한 40대 전 남편은 재판장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맞은 편에 앉은 검사의 입에선 “CCTV 영상에 만삭인 게 다 나오는 데…”라며 탄식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유족들은 고함조차 지르지 못한 채 “네가 어쩜”이라며 속삭이며 흐느꼈다.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김도형)는 21일 임신한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43)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A씨는 지난 3월 28일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한 상가에서 전처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A씨는 이혼한 B씨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아이를 갖자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숨질 당시 B씨는 임신 7개월째였다. 태아는 제왕절개를 통해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지 17일 만에 엄마를 따라 끝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공판 도중 A씨에게 “피해자는 배가 부른 상태였죠?”라며 범행 당시 B씨의 임신 사실을 인지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A씨는 “그땐 몰랐는데,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알았다”고 답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B씨의 변호인은 곧장 “피해자 측도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가 재판 말미에 발언 기회를 부여하자 B씨의 변호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피고인은 이 사건 전부터 미용실을 하는 피해자를 수시로 찾아가고 돈통에서 마음대로 돈을 갖다 썼다”며 “피해자는 이혼한 피고인의 스토킹을 떼어내려고 없는 살림에도 1천만원을 (A씨에게)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는 평소 자신이 피고인에게 살해당할 것 같다고 걱정하며 언니에게 어떻게 장례를 치러달라고까지 말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를 8차례나 흉기로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는데, 누가 봐도 당시 피해자는 만삭의 임산부였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방청석에 앉은 B씨의 언니에게 발언 기회를 주자 B씨의 언니는 “제 동생이 임신한 걸 몰랐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저희는 계속 힘들게 살아가는데 저 사람을 용서해주면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살라는 이야기냐? 부디 법에서 정한 최고의 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A씨의 변호인은 이날 피고인이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주장하며 정신 감정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피고인이 범행 사흘 전 병원에서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 상태라고 진단받았고, 병원 소견서에는 (피고인의)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나와 있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정신감정과 양형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 재판을 속행하기로 했다.
다음 재판은 7월 23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