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시론] 농산물 물가, 시장도매인제로 잡을 수는 없다

올 상반기 언론을 뜨겁게 장식한 금(金)사과 논란은 자연재해로 인해 사과 생산량과 공급량이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달 2일 ‘기후변화에 대응한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대책’을 발표했다. 뒤이어 농산물 유통과정에서의 비효율적 요소를 개선해 유통비용을 10%이상 절감시키겠다는 목표하에 지난 1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성과가 부진한 도매법인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유통 단계를 최소화한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규모를 2027년까지 5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했다.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 기반 조성과 유통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개선책이 나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농산물 물가 문제 해결 수단으로 시장도매인제가 언급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농산물도매시장은 과거 소수의 위탁상인이 생산자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격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를 해결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모두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를 위해 관련 법에서는 도매시장에서 생산자의 농산물 판매를 대행하는 도매법인을 두게 하였고, 도매법인이 취급하는 물량은 시장 내 중도매인이 구매하여 소비지 마트 등에 판매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도매시장에는 경매·입찰·정가·수의거래 등 다양한 거래제도가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 얘기하는 시장도매인제는 미국, 유럽의 도매상제도를 모델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시장밖 위탁상인이 시장내로 들어와 위탁 또는 매수로 생산자와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매시장 내 유통단계 축소를 목표로 2000년도에 도입되었다..그러나, 문제는 서구의 경우 생산자협동조합이 농가의 생산물량을 규모화하여 가격협상력을 갖고 도매상과 거래함으로써 농가가 제값 받고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농가 조직화 규모가 낮아 시장도매인과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하기 어렵다. 그래서, 생산자는 여전히 도매법인에 위탁해 판매하는 경매제를 선호하는 것이다.

더욱이 경매제는 농산물 가격이 낙찰과 동시에 공개되지만, 시장도매인제는 시장도매인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해서만 가격이 공개될 수 있고, 시장도매인제를 운영하는 일부 시장에서는 생산자에게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등의 여러 문제점들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과 한계가 있음에도 지난 30여년간 농산물 가격 폭등이 있을 때마다 시장도매인제 확대가 농산물 가격 안정과 도매시장 유통구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급변하는 소비지 유통의 변화에 대응하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기기 위해서는 생산자는 생산자단체를 통해 물량을 규모화하여 거래교섭력을 높이고, 도매시장은 도매법인간 경쟁 촉진, 정가·수의거래 확대, 물류 효율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농식품부가 개설한 온라인도매시장도 조속히 활성화되어 도매시장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유통의 효율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시장도매인제 확대가 농산물 물가안정 대응책으로 논의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일부 학자의 주장만으로 시장도매인제의 문제점이 다 가려지는 건 아니다. 이제 농산물 물가와 유통구조에 대해 좀 더 건설적인 방안을 논의해 보는 건 어떨까.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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