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바꿔치기’ 처벌은 솜방망이… ‘김호중 방지법’ 필요성 커졌다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21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33)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기엔 김씨가 국민 법감정을 건드렸다는 점도 중요 포인트다. 대중의 공분이 김씨를 향한 데에는 ‘음주 운전’ 사실 자체보다 이후 대처 과정에서의 문제가 더 크다. 김씨측은 다른 사람을 대신 자수시켰고, 이 과정에서 김씨의 옷을 대신 입고가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러나 역대로 ‘운전자 바꿔치기’는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쳐,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김씨는 지난 9일 오후 11시 40분께 음주운전 도중 반대편 도로 택시를 충돌하고 달아났는데, 김씨의 매니저가 3시간 뒤 자신이 사고를 냈다며 사고 당시 김씨가 입었던 옷까지 걸치고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22일 경찰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러한 '운전자 바꿔치기'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김씨처럼 사고 현장을 이탈했다가 운전자를 속여 신고하면 적발이 쉽지 않고,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혐의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시도한 김씨와 소속사 관계자들 역시 이런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한 교통경찰은 과거 신호위반 차량을 단속해 정차를 요구했는데 자신이 다가가는 사이 차 안에서 음주 운전자가 동승자와 자리를 바꿔 앉았고, 경찰서에 동행한 후에도 '내가 운전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으냐'며 한동안 잡아뗐다고 떠올렸다.

다른 경찰관은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더니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운전자는 이미 병원에 입원했고, 동승한 아내가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며 우겨 입증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대부분은 면허 취소 또는 정지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또 사고를 낸 뒤 엄한 처벌을 피하려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는 경우가 다수다. 김씨처럼 음주 사실을 숨기려 시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 경찰관은 "CC(폐쇄회로)TV나 블랙박스 영상이 충분히 확보되면 다행이지만, 작정하고 범죄를 감추려 주도면밀하게 동선을 짜고 블랙박스 등 영상을 삭제하면 실제 운전자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수사에 혼선을 주고 범행을 부인해 죄질이 좋지 않지만, 실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적다는 점도 운전자 바꿔치기 근절을 어렵게 한다.

음주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 등 혐의로 기소된 가수 이루는 지난 3월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1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루는 두 차례 음주운전을 했으나 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이 양형 요소로 고려됐다.

래퍼 노엘(본명 장용준)도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 상태로 운전하다 오토바이와 충돌한 후 바꿔치기를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무면허로 차량을 몰다 사고를 낸 뒤 운전자 바꿔치기를 한 전직 경찰서장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유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대부분 동종 전과가 있거나 피해자가 사망 또는 중상을 입는 등 죄질이 극히 좋지 않은 경우였다.

김씨는 사고 후 도주해 추가로 맥주를 4캔을 구입해 마신 것으로 드러나면서 의도적으로 혈액·소변 검사 결과를 왜곡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는다.

대검찰청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적발을 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마시면 1년∼5년의 징역 또는 500만원∼2천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형사처벌 규정 신설을 법무부에 입법 건의했다.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변호사는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 집으로 도망간 뒤 경찰이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 당시에는 술을 먹지 않았다고 우겨 무죄 또는 불기소로 끝나는 경우가 있었다"며 "입법이 어렵다면 법원이 법정 형량에서 상한을 선택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정된 증거 속에서 적발을 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음주를 했는지 여부를 명백히 밝힐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경찰관은 "뺑소니 또는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면 초범이거나 자수한다고 해도 엄히 처벌받을 수 있도록 수사 방향과 법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씨가 23∼24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 콘서트를 앞둔 가운데 그의 구속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찰은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 도주치상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김씨는 공연 강행 의지를 밝힌 상태다.

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김씨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친 것이 아니라 차량과 부딪혔고, 늦었지만 범행을 자백한 점, 유명인인 만큼 도주 우려도 없고 주거도 분명한 점 등을 고려하면 구속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점쳤다.

법무법인 호암 신민영 변호사는 "증거인멸과 범인도피 등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많고 유명인의 사법방해가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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