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 안전 제공”…대한항공 ‘절치부심’으로 만든 新안전운항 시스템, 미래를 보다 [히든스팟]

〈히든 스팟〉

수많은 기업들에는 다양한 조직과 직군이 있습니다. 기업마다 고유 사업을 하는 가운데 다른 기업에는 없거나 차별화된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아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하면서 차곡차곡 성과를 올리는 이들이야말로 미래를 만드는 영웅이며 비밀병기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히든 스팟’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3시간 뒤 일본 상공에서 ‘터뷸런스’(난기류)가 예상됩니다. 진입 시 주의 부탁드립니다.”

23일 방문한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종합통제센터(OCC, Operations&Customer Center).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뉴욕에서 인천으로 이동 중인 ‘대한항공 KE082편’과의 전화 교신이 한창이었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난기류로 태국 방콕에 비상착륙 하는 사고가 발생한 여파로 OCC 내부는 예측을 벗어나는 기상이변에 대해 한층 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승용 종합통제본부 부본부장 겸 통제운영부 담당 상무는 “상층풍에 따라 여러 항로를 만들고, 운항 계획을 세운다”며 “가급적 많은 정보를 기장들에게 전달하고, 우회 운항 등을 협의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통제운영팀 운항관리사 김성진 차장이 항공기 위성 교신 시연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항공업계에서 OCC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지상 조종실’로도 불린다. 대한항공은 일평균 400여편의 항공기를 운항하는데, OCC 내 11개 부서, 240여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이를 상시 모니터링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및 세계 항공사들과 협력해 난기류 인식 플랫폼을 구축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최신 설비를 갖춘 OCC를 개소했다. 리모델링된 OCC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OCC 내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가로 18m, 세로 1.7m 길이의 대형 스크린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센터 가장 왼편에는 해외 및 국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운데 화면에는 현재 운항 중인 대한항공 항공기의 항적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옆으로는 김포·인천국제공항의 지상 트래픽과 운영 현황, 게이트 상황 등이 띄워져 있었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내 종합통제센터(OCC). 초대형 화면에 세계 뉴스를 비롯해 항공기 항적이 띄워져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테러·재난·자연재해 등 세계 주요 이슈를 보는 동시에 운항 중인 항공기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비행기가 계획된 고도로 이동하고 있는지, 혹시 연료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의 데이터도 OCC 내에서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OCC는 운항관리센터(FCC), 정비지원센터(MCC), 탑재관리센터(LCC), 네트워크운영센터(NOC)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FCC 직원들은 운항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모습이었다. 항로와 연료, 탑재량, 비행시간을 산출, 최적 항로를 구성해 비행시간을 줄이고 연료를 절감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다.

정비가 필요한지 점검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MCC, 항공기 내 무게중심을 관리하는 LCC, 비정상 상황 발생을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세우는 NOC 구성원들 모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유종석 대한항공 안전보건 총괄 겸 오퍼레이션 부문 부사장이 23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안전관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대한항공은 OCC 외에도 안전 문화 구축에 전사적인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22년 4월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겪은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유종석 안전보건 총괄 겸 오퍼레이션 부문 부사장은 “20여년간 무사고를 유지하다가 2022년 활주로 이탈 사고가 있었다”며 “우리가 그동안 방심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됐고, 컨설팅 단체와 12주에 걸쳐 현장 방문, 인터뷰, 설문 조사 등 대대적인 안전 컨설팅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안전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다. 유 부사장은 “안전정책 및 목표·안전보증·안전 위험도 관리·안전 증진·안전 문화 등 4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안전 문화를 다시 구축하고, 협력업체의 위험관리에도 보다 체계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OCC 리모델링 역시 안전 관련 기능을 한데 모으기 위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항공안전전략실 역시 안전 운항을 위한 대한항공의 노력이 집중된 곳이다. 안전기획팀, 안전품질평가팀, 지상안전팀, 안전조사팀, SMS(Safety Management System)팀으로 이뤄진 항공안전전략실 내에는 50여명이 근무한다. 이들은 안전정책 및 목표 수립을 통해 안전관리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위험도를 관리한다.

코로나 사태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등 대내외 변화 역시 위험 요소 중 하나다. 유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안전 기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며 “아시아나항공과 인수합병 과정에서 안전분야의 통합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하므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 25m, 세로 50m 크기의 대형 수영장. 비상 착륙 훈련을 할 수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비상탈출을 시연하는 모습. 사진=김지윤 기자

대한항공은 비행기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 본사 건물 옆에 위치한 객실훈련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객실승무원들이 안전 훈련을 받는다.

가로 25m, 세로 50m 크기의 대형 수영장을 비롯해 보잉 747 등 항공기 동체 모형을 갖추고 있다. 승무원들은 이날 도어 작동, 기내 비상 탈출 등을 시연했다. 탈출을 앞두고는 한 승무원이 “벨트 풀어”, “나와”, “짐 버려” 등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 승객들이 극심한 공포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분명한 명령어를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 직원이 테이저건으로 난동 승객을 제압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특히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제압하는 훈련도 엿볼 수 있었다. 경고에 불응하는 고객을 뒤에서 포박하고, 최악의 경우 테이저건까지 발사할 수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1~4월까지 기내 포박 장비를 사용한 사례가 5건이나 됐다”며 “작년엔 1건에 그쳤는데 난동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기내 안전을 위협한다면 필요시 제압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항공기 정비가 이뤄지는 대한항공 정비 격납고. 사진= 김지윤 기자

한편 대한항공은 항공기 정비가 이뤄지는 ‘정비 격납고’도 언론에 공개했다. 축구장 2개 규모의 격납고에서는 대형기 2대와 중·소형기 1대 등 항공기 3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이륙 전과 착륙 후 항공기 상태를 매번 점검한다.

임직원의 건강 관리를 위한 ‘항공의료센터’도 안전 운항을 위한 핵심 시설이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은 물론, 불규칙한 스케줄로 인한 건강관리, 승무원 트라우마 관리 등도 담당한다. 대학병원을 방불케 하는 널찍한 대기실과 영상검사실, 채혈실, 운항신체계측실 등이 마련돼 있었다.

최윤영 항공의료센터장은 “조종사의 경우 진료가 필요할 경우 2년간 유급 보상을 받으며 치료를 받은 뒤 안전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하고 있다”며 “항공 운항을 책임지는 조종사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이 센터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윤영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장이 항공의료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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