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오전 의료진이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을 지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27년 만에 의과대학 증원이 확정된 가운데 ‘의료공백’ 장기화로 병원들 경영난이 악화일로다. 병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무급휴가 신청까지 받는 등 모자란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도권 주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서울성모·삼성서울)은 지금 이 상태로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을 올여름 즈음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지금은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는데 계속 이렇게 가면 여름 즈음에 도산하는 병원이 나올 수 있다”라며 “수술과 입원 환자 비율은 계속 줄고,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 자율 무급 휴가 등을 받고 있지만 적자 폭을 줄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형 대학병원들은 전공의가 떠난 이후 하루 평균 10억원 중반대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40일간 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추세라면 현재 석 달 넘게 이어지는 의료공백으로 인해 한 병원당 약 1100억원의 적자가 나오고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정부는 병원들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1285억원 규모의 예비비와 매달 건강보험 재정 1882억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금액으로는 모든 병원들의 경영난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 병원 관계자는 “현재 건강보험공단에서 돈이 들어오면 플러스가 됐다가 직원 월급 주면 다시 마이너스가 된다”라며 “다음달부터는 계속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아마도 여름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직원들은 예상하고 있다”라며 “정부 지원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조금 더 버티는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는 24일 대구 한 대학병원 외래 진료 대기실 TV에 전공의 공석으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송출되고 있다. [연합] |
병원들은 병동 통폐합 등 축소 운영과 무급휴가 확대 등 비용 절감에 더욱 고삐를 조이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은 물론이고 경희대의료원, 고려대의료원, 중앙대병원, 건국대병원 등 전 직군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대학병원은 늘고 있다.
일부 병원은 희망퇴직 카드도 꺼냈다.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한양대병원 등은 의료진을 제외한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일각에선 수개월 내 지방 대학병원을 시작으로 휴업이나 폐업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일부 병원이 경영악화로 휴업이나 폐업이 불가피한 상황이 다가올 것”이라며 “대학병원이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이제 그 여파가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 인력과 간호사 등 채용에도 전반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라며 “보건 의료계는 하반기부터 그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계속 튀어나올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