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에 하루 2명 피해…‘교제폭력’ 입법 보완 22대 국회선 어떻게[이런정치]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688명. 경찰청이 집계한 2022년 전체 범죄자 중 피해자와의 관계가 ‘애인’으로 분류된 강력범죄자 숫자다. 뒤집어 생각하면 재작년 한 해 동안 연인으로부터 강력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평균 하루 2명씩 있었던 것이다. 공식 통계여서 수치 자체가 보수적으로 잡히는데다, 행위가 아닌 범죄자수를 정리한 것이고, 통계상 강력범죄로 분류되지 않는 범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일상에서의 ‘교제폭력’은 통계로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파악할 수밖에 없다.

2021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제정·시행 되면서, ‘데이트폭력’으로도 불렸던 교제폭력 피해자들도 위험 상태에서 우선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기초적 제도가 만들어졌다. 스토킹범죄의 유형에 교제폭력 상황이 포함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킹처벌법이 여전히 피해자 보호에 부족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21대 국회 종료를 맞게 됐다.

이별을 원한 여자친구를 서울 강남에서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의대생 사건,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거제 사건 등 교제폭력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교제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해 별도 특례법 제정 추진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임세준 기자

국회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입법·정책 조사분석 기관인 입법조사처는 22일 ‘교제폭력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입법 과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현행법 체계에서 교제폭력에 대한 구체적·체계적 대응을 위해 단독 법률 형식의 특례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담겼다.

교제폭력은 현재 또는 과거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성적 공격행위와 스토킹, 통제행동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폭언이나 협박에서부터 폭행, 상해, 강간,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형태로 발생하는데, 연애 감정에 기초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반복된 위험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

그동안 교제폭력 사건은 당사자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하지만 보고서는 교제폭력 사안에 맞춰 적용할 수 있도록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 입법을 통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교제폭력에선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스토킹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별도 입법을 통해 교제폭력의 의미, 관계, 폭력의 범위를 법적으로 구체화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혼한 사람끼리의 교제,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교제, 같은 성(性)끼리의 교제나 당사자끼리 교제 여부에 대해 주장이 엇갈릴 수 있는 경우 등은 실제 법 집행 현장에서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제폭력 피해자를 빠르게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특례법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및 보호절차에 대한 규정은 범죄의 특성과 차이를 반영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피해자 보호에 대해 지적되는 문제점과 실효성 있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20대 의대생 최모 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

현행법상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교제폭력 사건 피해자 보호의 경우 스토킹처벌법 규정이 주로 적용된다. 하지만 2021년 제정·시행된 직후부터 문제점이 드러나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폐지’ 등이 지난해 첫 개정 법률에 반영되긴 했지만, 여전히 피해자 보호조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스토킹범죄에 대한 대응은 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순으로 진행된다. 응급조치는 진행 중인 스토킹행위에 대해 사법경찰관리가 신고받은 경우 즉시 현장에 나가 제지하는 조치 등이다. 지속적·반복적으로 스토킹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긴급을 요할 때 신고에 의해 사법경찰관이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연락금지 등 조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긴급응급조치다. 잠정조치는 스토킹범죄 재발 우려가 있을 때 검사의 청구 또는 법원이 직권으로 접근금지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하지만 규정 취지가 무색하게 실무에선 잠정조치의 경우 며칠 만에 즉각적으로 결정되지 못하고 지연되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대응 이전에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서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 이후로도 스토킹처벌법 개정 법률안은 3건이 발의됐다. 하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의원 발의로는 잠정조치에 스토킹 행동에 대한 상담위탁을 추가하는 법률안(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안), 긴급응급조치 기간을 3개월로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률안(김은희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안)이 제출됐다.

정부에선 지난 2월 형사소송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과 연동해 스토킹범죄 피해자의 소송기록 열람·등사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제출했다. 당장 오는 29일로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때문에 개정 논의는 22대 국회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경찰청이 발행한 ‘2022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애인을 상대로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수는 688명이었다. 살인 기수 33명, 살인미수 등 39명, 강도 7명, 강간 384명, 유사강간 48명, 강제추행 122명, 기타 강간·강제추행 등 16명, 방화 39명으로 집계됐다. 상해, 폭행은 통계상 ‘폭력범죄’로 분류돼 있어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아울러 지난해 3월 대검찰청(대검)이 밝힌 경찰청 교제폭력 검거인원 통계에 따르면 2014년 6675명이던 교제폭력 사건 검거 인원은 2022년 1만2841명으로 8년 새 92.4%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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