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돈 때문에 가둘 수 없죠”…행복한 닭·건강한 달걀의 비밀 [르포]

22일 경남 합천의 로가닉파크 농장. 방사가 시작되자 계사 안에 있던 닭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전새날 기자

[헤럴드경제(합천)=전새날 기자] “한때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 후회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얘네(닭)들이 아침 외출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먹고 살려고 가둔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정진후 대표는 2012년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청솔원’의 농장주다. 그는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퍼지기 전부터 자연방사로 닭을 키웠다. 1999년부터 경남 하동에서 산란계(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닭) 농장을 운영한 그는 “양계 경험이 없던 처음에는 조류니까 풀어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애완닭처럼 키우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현재 정 대표는 청솔원을 포함해 로가닉파크 농장까지 2곳의 자연방사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2일 찾은 경남 합천의 로가닉파크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 계사 앞에 모여있는 닭들이 보였다.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가 ‘얼른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본격적인 방사를 위해 닫혀있던 계사 문을 열었다. 기자를 포함한 낯선 사람들이 보이자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단 몇 초 만에 계사 안에 있던 닭들이 쏟아지듯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2일 오후 경남 합천의 로가닉파크 농장. 방사된 닭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전새날 기자

이곳에서 자란 닭들이 낳은 달걀에는 ‘1번’이라는 숫자가 붙는다. 껍데기에 새기는 난각번호에는 산란일과 사육 환경, 생산자 정보가 표기된다. 계란 맨 뒤에 새겨진 것이 바로 숫자 1부터 4로 구분되는 사육 환경 번호다. 번호가 올라갈수록 닭을 사육하는 환경이 좋아진다. 닭 1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넓다는 의미다. ‘동물복지’라는 이름은 평사에서 자라는 2번 닭부터 붙는다. 방사장을 자유롭게 다녀야 1번이 된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는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돼지·닭·오리농장에 대해 국가에서 인증한다. 인증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인증마크’를 표시한다. 부문별로 산란계(2012년), 양돈(2013년), 육계(2014년), 젖소, 한육우, 염소(2015년), 오리(2016년)농장에 대해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계사에서 나온 닭들이 방사장 뒤편으로 이어진 숲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전새날 기자

실제 닭들은 해가 질 때까지 자유롭게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방사장 넓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로가닉파크는 총 1만 마리의 닭을 5000마리씩 2개의 계군으로 나눴다. 계군이 섞이지 않도록 75m 길이의 그물망을 친 것이 전부다. 계사 뒤로 펼쳐진 푸른 숲과 넓은 땅이 하루 동안 닭들이 뛰노는 놀이터다.

닭의 하루는 오전 6시 사료 배급부터 시작한다. 방사는 9시께 이뤄진다. 밖으로 나간 닭들은 해지기 30분 전 다시 계사로 돌아온다. 정 대표는 “닭들은 시간이 되면 알아서 돌아온다”며 “진돗개만큼 귀소본능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복귀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다. 일몰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해가 길어진 최근에는 오후 7시 30분께 계사로 돌아온다. 밖에서 약 10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물을 마시고, 일광욕을 하고, 토욕(흙 목욕)에 집중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토욕은 닭의 깃털 사이에 있는 벌레를 털어내는 행위”며 “일광욕도 닭의 본능이라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뭇잎을 주자 몰려드는 닭들. 전새날 기자

사실 방사 시간이 길수록 농장주에게는 손해다. 산란율이 떨어져서다. 로가닉파크의 닭들은 일반 케이지 사육장보다 산란율이 약 10% 낮다. 하루 달걀 생산량은 8500개 수준이다. 그는 “일반 케이지에서 길러지는 닭의 산란율은 1년 기준 90% 정도 된다”며 “새로운 닭이 들어와 산란율 정점을 찍는 것을 피크라고 하는데, 우리는 평균 80%이면 산란율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닭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윤기 있는 깃털과 꼿꼿한 벼슬, 상처 없이 깨끗한 피부만 봐도 알 수 있다. 정 대표는 “케이지 닭들은 밖에 나오고 싶어 철창에 몸을 비비다 보니 목털이 없다”며 “머리 위 벼슬도 서 있지 않고 누워있다”고 전했다.

애정을 쏟는 만큼 품질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닭들이 풀밭에서 논다면 방사를 안 시킨 것”이라며 “닭은 풀을 좋아하는 잡식성이라 키에 닿는 곳에 풀이 없어야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달걀을 샀는데 껍질과 노른자의 색깔이 동일하다면 그것 역시 방사를 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달걀의 난각 색이 변하고, 노른자 색깔도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부연했다.

자연방사한 닭이 낳은 달걀. 전새날 기자
자연방사한 닭이 낳은 달걀. 농장 관계자는 “흰자가 젤리같은 모습을 띠고 있으면 품질이 높은 달걀”이라고 설명했다. 전새날 기자

다만 산란율을 비롯해 생산 효율성은 확연히 떨어진다. 방사할 수 있는 땅도 필요하다. 정 대표는 “현재 계사 높이가 10m라 오픈 케이지를 넣으면 적어도 6단은 올릴 수 있다”며 “생산하는 계란 수도 최소 4배 이상은 더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닭이 행복해지려면 인력도 필요하다. 이 농장에서 일하는 직원도 4명이었다. 특히 정 대표는 아직도 달걀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수거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닭들과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에선 닭 생리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바로 조치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생산성이 낮으니, 가격은 비싼 편이다. 동물복지달걀 중에서 ‘1번 달걀’이 일반달걀보다 2~3배 비싼 이유다. 공급도 넉넉하지 못하다. 현재 ‘초록마을’ 등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주로 찾는 판매처를 중심으로 공급되고 있다.

정 대표는 행복한 닭과 건강한 달걀을 위한다면 가치 소비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케이지에 갇힌 닭들이 줄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서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닭의 행복은 결국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물복지를 생각하면서 달걀 하나를 먹더라도 건강한 달걀을 소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자연방사한 닭이 낳은 달걀. 껍질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색을 보이는 일반달걀과 다르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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