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중국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출에 따른 유통·제조업의 위기'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동일 한국유통학회장, 이정희 중앙대학교 교수,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정석준 기자. |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중소 수입유통업자는 고사 위기다. 제조사는 주문량 감소와 매출 하락의 늪에 빠졌다.”
국내 이커머스에 입점한 유통업체들이 미비한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안전 규제가 역차별을 만들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중국 이커머스 공습에 유통사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운섭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회장은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국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출에 따른 유통·제조업의 위기 토론회’에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로)국내 중소 규모의 구매대행, 병행수입, 수입유통업자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그야말로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이커머스는 국내 업체들이 상품 수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세, 부가가치세, KC 인증 비용을 내지 않는다. 국내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일부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다. 해외 제품을 유통하려는 국내업체는 안전을 입증하기 위해 KC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신체에 직접 닿거나 유해 소재가 사용된 일부 품목을 인증하는 데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하는 사례도 있다. 인증을 위한 심사 역시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백 회장은 “국내 플랫폼에 대해서만 규제를 강화하면 국내 플랫폼 시장의 경쟁력 약화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국내 중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중국의 낮은 인건비와 물류비, 대량생산 및 대량주문을 통한 낮은 원가 전략은 국내 제조업체들에 주문량 감소와 매출 하락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백 회장을 비롯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과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박진용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옥경영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구진경 산업연구원 박사, 윤영범 산업통상자원부 온라인유통 TF팀 팀장, 우경필 중소벤처기업부 사업영역조정과 과장 등이 참석했다.
중국 이커머스의 국내 진출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이를 ‘상수’로 놓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희 교수는 “그동안 국내 기업끼리 경쟁했기 때문에 닫힌 생태계였지만, 글로벌 기업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한국의 유통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 등) 정당한 규범적 합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진용 교수는 “가격을 무기로 한 중국 이커머스의 한국 진출은 국내 유통 플랫폼 생태계 활성화 요인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생태계 파괴라는 더 큰 단점이 있다”며 “중국 이커머스의 한국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커머스의 성장이 중소제조기업, 중소유통기업의 성장과 결합되도록 지원하고, 규제 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통 정책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진용 교수는 “차이나 커머스는 파격적 수수료 정책과 물류 경쟁력, 불륨을 키워 시장에 진출하는 등 특징을 보인다”며 “한국 시장에서 조금 손해보더라도 한국 소비자 데이터 확보 등에서 충분히 이점 얻을 수 있어 생각보다 순순하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유통 관련 정책 설립 과정에 정책 철학이 먼저 정해지고, 이후 정책 전략과 실행 대안이 잡히도록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플랫폼 산업을 ‘국가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연승 교수는 “국내 셀러들의 해외 판매 증대를 위한 역직구 플랫폼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디지털 플랫폼 육성 정책이 수립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국가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업계와 학계의 주장에 공감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윤영범 팀장은 “해외직구가 빠르게 국내시장에 확대되면서 유통업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며 “국내 유통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제조업체가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 규제 완화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