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차기 총리 유력 스타머는 누구…검찰총장 출신, 인지도는 낮아[세모금]

지난 27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가 서 웨섹스에서 총선 캠페인을 위한 첫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갑작스러운 조기 총선 선언으로 영국 사회가 선거 정국에 돌입한 가운데 노동당이 BBC 집계 평균 44%의 지지율로 23%의 지지를 받는 보수당을 여유있게 앞서면서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새로운 노동당 시대를 이끌 가능성이 높은 키어 스타머 당수는 영국 국민 다수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는 등 인지도가 낮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스타머 당수에 대해 “기쁨보다는 의무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며 “보리스 존슨의 ‘카리스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를 둔하다고 치부하지만 이런 자질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1962년 영국 런던 서더크에서 태어난 스타머 당수는 자신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공구제작자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강성 노동당 지지자였다. 그의 이름 역시 노동당의 초대 하원의원인 키어 하디에서 따왔고, 16세부터 지역 노동당 청년지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에서 일하는 빅토리아 알렉산더와 2007년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리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87년 인권 변호사가 된 그는 2002년에는 영국 왕실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고든 브라운 내각으로부터 검찰총장에 임명돼 2013년까지 임기를 지냈고 이듬해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스타머는 2015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북런던 거점인 홀본앤판크라스에서 보수당 윌 블레어 후보를 누르고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제러미 코빈 당수가 이끄는 그림자 내각에서 이민부 장관을 맡았지만 1년 만에 그림자 내각에서 사퇴하며 오언 스미스를 차기당수를 지지했다. 당수 재선에 성공한 코빈은 그에게 다시 그림자 내각의 브렉시트부 장관직을 제시했고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당의 브렉시트 정책을 총괄한 그는 즉각적인 브렉시트를 추진한 테레사 메이 총리에 맞서 2차 국민투표를 통한 유럽연합(EU) 잔류를 주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만 노동자들의 반 이민 정서를 의식한 코빈 당수가 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흐지부지 됐다.

2019년 초선에서 3선에 성공한 스타머는 당수 선거에 출마해 코빈의 심복인 레베카 롱베일리와 맞섰다. 당초 평당원 지지를 받은 롱베일리가 우세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스타머가 결선투표 없이 무난하게 승리하며 정치 입문 4년 만에 당수에 올랐다.

당수 임기 초반에 터진 코로나19 봉쇄 기간 그는 보리스 존슨 내각에 대해 ‘건설적인 반대’ 를 통해 국난 극복에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존슨 내각이 코로나 대응에 실패하며 우왕좌왕하는 동안 당지지율을 10%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봉쇄기간 동안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나지는 못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실패했지만 당내 반유대주의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코빈과 롱베일리의 당적을 박탈하는 과단성도 보였다.

그는 상대방을 면전에 두고 벌이는 일대일 토론에 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존슨 총리가 대봉쇄 시기에 몰래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총리질의응답(PMQ)에서 강하게 몰아 부치며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 영향으로 같은 해 5월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은 모처럼 승리를 거뒀다.

10월에는 “절세도, 법인세 인하도, 에너지 가격 동결도, 소비세 폐지도, 경제에 대한 신뢰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Gone)”며 섣부른 감세안을 내놨다가 파운드화와 영국 국채의 가치하락으로 곤경에 처한 트러스 총리를 몰아세웠다. 이후 트러스 총리는 취임 한 달 반 만에 사임해야 했다.

2023년 7월 ‘영국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스타머 당수는 “우리가 필요한 것은 성장, 성장, 성장 이 세가지”라고 말했다. 1996년 보수당의 18년 집권기간을 끝낸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노동당 정부의 우선 순위로 ‘교육, 교육, 교육’을 제시한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노동당 당수로서는 흔치 않은 화두였다.

앞서 2021년 5월 재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의 전통적 텃밭으로 부류되던 하틀리풀을 57년 만에 보수당에 내준 것이 스타머 당수에게 정치적 위기이자 변화의 기회로 작용했다. 스타머 당수는 브렉시트 문제에 매달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대학 등록금 폐지, 에너지 및 수도 회사 국유화 등 선거기간에 내걸었던 급진적 공약을 철회했다. 당내 강경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당이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원 없는 지출 공약을 할 수 없으며 유권자들의 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당시 가디언 기고문에서 “공공 지출 액수는 더이상 공익을 위한 정부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최선의 척도가 아니다”며 “노동당은 너무 자주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을 고치겠다며 막대한 지출을 약속하는 데에만 안주해왔다”고 자신의 당을 비판했다.

그는 상황이 반전되려면 경제적 안정이 우선되야 한다면서 철통 같은 재정 준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서비스에 있어 획일적인 접근 방식을 벗어나 수요자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로 전환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예방하는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16일 스타머 당수는 무당층 유권자에 대한 당의 제안의 일환으로 집권시 처음으로 실행할 공약 6가지를 내세웠다. ▷경제 안정화 ▷NHS 대기시간 단축 ▷에너지 공기업(Great British Energy) 설립 ▷반사회적 행동 단속 ▷교사 6500명 신규 채용 ▷대테러 권한을 가진 국경 안보 부서 출범 등이다. 집권하더라도 소득세나 국가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27일에는 총선 캠페인 시작 후 첫 대중연설을 통해 “지난 14년 동안 영국의 생활 수준이 그 이전보다 더 악화하면서 국가 위기가 초래됐다”며 “더이상 권력자들이 자신의 가치나 이익을 존중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와 있다”며 보수당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게 국가 쇄신이며 영국은 여러분의 공헌을 존중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일하는 사람을 위해 국가를 우선시하고 당은 2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스타머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의 변신이 반드시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처럼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BBC는 “기후변화, 이민, 인공지능, 우크라이나 전쟁, 고령화 등 지금 영국이 처한 상황은 냉전 종식 이후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낙관주의의 시대였던 1990년대와는 매우 다르다”며 “블레어 모델은 이 어려운 시기에 총선 승리를 보장하는 기성품 가이드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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