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파업 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민지 기자 |
삼성전자가 사상 첫 파업 위기에 직면하면서 회사 내부는 물론 경제계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산업계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파업 선언이 가져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파업 리스크에 따른 위기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리더십과 경영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금교섭에 임하는 사측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데다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의 사업 부진도 지속되며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이례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하며 사업 반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전례없는 파업이 가시화하면서 삼성전자의 이러한 움직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재계에서도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노조 리스크가 산업 전반에 몰고 올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삼노는 지난 2019년 11월 1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노조로 출범했다. 이전에도 소규모 노조가 있었지만 양대 노총 산하 노조는 전삼노가 처음이었다. 전삼노 조합원 수는 이달 27일 기준 2만8400명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전삼노는 최근 임금교섭 과정에서 사측과의 갈등으로 파행이 지속되자 단체행동에 나섰고, 급기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4일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진행한 집회에 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바 있다. 이날 파업 선언 기자회견에도 최순영 전국금속노조 부위원장이 나와 직접 연대 발언까지 했다.
상급단체 없이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 노조)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그 목적성이 불분명하다”며 전삼노를 비판했다. 초기업 노조는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전자 DX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삼성전기 존중노조로 구성됐다.
초기업 노조는 “금속노조 대의원 회의록을 통해 (전삼노가) 장기간 민노총 금속노조와 결탁해 삼성 내 민노총 조직화에만 힘쓰며 삼성 직원들을 집회에 동원한 모습이 확인됐다. 진정 삼성 근로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것인지 의심된다”고 주장해 삼성 내 노노갈등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전삼노가 초기업 노조와의 갈등 구도 속에서 선명성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파업이라는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아가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더욱 뚜렷해진 국면에 노동계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외 악재가 지속되면서 경제 침체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노동계 중심으로 치우칠 경우 노사화합의 길이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경제계는 지금 상당히 저성장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제 새로운 모색을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가 기본 생각”이라며 “‘과거에서 충분히 해왔던 기조대로 계속해서 가면 이 대한민국 괜찮은 겁니까?’라는 질문을 전 사회적으로 해봐야 될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창사 이래 첫 파업은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민관이 원팀으로 협력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빠른 타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