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이승조 작품 ‘핵 F-G-999(Nucleus F-G-999)’. 해당 사진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당시 작품이 벽에 걸린 모습. [국립현대미술관·유족 제공]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한국미술사에서 기하학적 추상의 발전을 선도한 이승조(1941~1990)의 대표 작품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에 걸렸다. ‘뉴욕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모마가 신규 프로그램 ‘현대카드 퍼스트 룩’(Hyundai Card First Look)의 일환으로 1일부터 특별 전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오는 가을까지 진행된다.
현대카드 퍼스트 룩은 건축, 그림, 디자인, 영화, 사진, 조각 등 모마가 소장한 작품을 큐레이션 해 선보이는 전시 프로그램이다. 연간 2~4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뉴욕 현지는 물론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도 관련 전시가 열린다. 무엇보다 모마가 관심을 두고 있는 작품 수집 경향과 소장품 방향성을 확인하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에는 모마에 한국인 큐레이터도 파견된다.
이승조 작가. [유족 제공] |
이날 막을 올린 모마 전시에는 이승조의 1970년작 ‘핵 F-G-999(Nucleus F-G-999)’이 벽에 걸렸다. 납작한 붓과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해 세심하게 색을 칠한 뒤, 사포질을 통해 화면을 갈아내어 완성한 작품이다. 금속 파이프, 형광등, 연료봉, 전기, 음악 등이 연상되는 화면으로 무엇보다 빛의 진동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승조는 1962년 정치적 격변과 급격한 경제 발전의 시기였던 한국 전쟁의 여파 속에서 초국가적 모더니즘으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 그룹 ‘오리진’(Origin)의 창립 멤버이자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했던 작가다. 그가 1968년부터 진행한 ‘핵’(Nucleus) 연작은 작가가 서울 근교에서 눈을 감고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눈의 망막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무언가를 상상하며 그리기 시작한 작업이다.
모마 전경. [모마 제공] |
이승조와 함께 미국 공연 예술가 마르틴 구티에레스의 작품 3점도 함께 채워졌다. 구티에레스는 패션과 편집 사진의 관습을 활용해 대중 매체가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가치를 부여하는지 질문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본인이 모델이자 사진작가, 편집장 역할을 했던 아트북 ‘원주민 여성(Indigenous Woman·2018)’에 포함된 사진 작업 3장을 선보인다.
작가는 과테말라 고지대 출신의 마야 원주민 여성, 화려한 머리 장식과 보석으로 장식한 ‘치치미메’(tzitzimime), 아즈텍 신처럼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다양한 패션과 허구적인 광고 이미지를 통해 인종과 성별의 범주를 재고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에 대해 “우리는 신이 무엇이든 신의 형상으로 스스로를 보는 경향이 있다”며 “나는 이런 이분법에서 벗어나 신체를 기리는 도상과 신체보다 더 거대한 신을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