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대만 국립 타이베이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2024 컴퓨텍스 기조연설 현장. 시간당 30㎜가 넘는 폭우에도 연설 3시간 전부터 긴 줄이 형성돼있다. 이날 행사에는 약 6500여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메웠다. 김민지 기자 |
지난 2일(현지시간) 대만 국립 타이베이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2024 컴퓨텍스 기조연설 입장 대기 장소. 이날 행사에는 약 6500여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메웠다. 김민지 기자 |
[헤럴드경제(타이베이)=김민지 기자] “젠슨 황 보러 온거죠? 오늘 그의 발표가 매우 중요할 거라고 들었어요. 대만 사람들도 엔비디아와 그를 아주 좋아해요.”
2일(현지시간) 오후 7시 대만 국립 타이베이 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열리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기조연설 현장을 찾기 위해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 기사는 곧바로 “젠슨 황을 보러온거냐”며 웃었다. 황 CEO를 무척 좋아한다며 양손으로 ‘쌍따봉’까지 치켜세우는 기사를 보며 대만에서의 그에 대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는 4일 개막하는 대만 컴퓨텍스는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의 IT 박람회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글로벌 PC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180도 반전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개막 이틀전부터 기조연설에 나서며 지원사격한 덕분에 예년보다 규모가 2배 이상 커지며 활기를 찾았다.
▶폭우에도 6500여명 참석…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 실감=현장에 도착하자 황 CEO의 인기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기조연설 시작 시간은 오후 7시. 그러나 프리이벤트가 시작되는 오후 4시 전부터 스포츠센터 바깥까지 긴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2일(현지시간) 대만 국립 타이베이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2024 컴퓨텍스 기조연설 현장. 시간당 30㎜가 넘는 폭우에도 연설 3시간 전부터 긴 줄이 형성돼있다. 이날 행사에는 약 6500여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메웠다. 김민지 기자 |
특히, 이날에는 시간당 30㎜의 폭우가 내렸을 정도로 악천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참가자들이 키노트 시작 3시간여 전부터 줄을 섰다. 행사장에 입장하려는 줄이 약 200여m 이어지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날 기조연설 참가자들은 약 6500명으로, 행사장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황 CEO는 이날 기조연설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등장했다. 무대에 그가 나타나자 함성 소리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아이돌이나 슈퍼스타 못지 않은 인기였다.
그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연설 내내 AI 시대에 엔비디아와 대만 기업들 간의 끈끈한 파트너십에 대해 강조하며, 대만에 대한 애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 CEO에게 대만은 고향이다. 발표 중간에 대만어로 농담을 하거나 부연설명을 할 때마다 관중들은 함성을 보냈다.
그는 “우리 엔비디아의 소중한 파트너들의 고향인 대만에 와서 매우 기쁘다”이라며 “대만과 엔비디아는 파트너십을 통해 전세계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표 가장 마지막에 선보인 동영상에서는 “대만 기업들과 새로운 컴퓨팅 시대를 열고 함께 성공적인 산업을 번영시키고 싶다”며 대만에 대한 헌정 영상을 보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대만 국립 타이베이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2024 컴퓨텍스 기조연설 현장. 이날 행사에는 약 6500여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메웠다. 김민지 기자 |
이날 행사에는 엔비디아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대만 주요 기업들의 CEO가 총출동 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대만에서도 드문 일이라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졌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플랫폼인 ‘블랙웰’을 도입하고 있는 대만 기업들의 사례를 들었다. 일례로 폭스콘(Foxconn)은 엔비디아 그레이스 블랙웰을 사용해 AI 기반 전기 자동차와 로봇 플랫폼을 위한 스마트 솔루션 플랫폼을 개발하고, 언어 기반 생성형AI 서비스를 확대한다. 엔비디아 옴니버스 플랫폼에서 공장 디지털 트윈을 개발해 공장 설비 배치를 최적화하거나 엔비디아 메트로폴리스 기반의 AI 카메라로 근로자 안전을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2주간 대만 머무르는 황 CEO…‘대만 파트너십’ 부각=젠슨 황 CEO는 ‘컴퓨텍스’ 참석을 위해 지난 26일부터 타이베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오는 7일 출국까지 약 13일 간 대만에 머무를 예정이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엔비디아 CEO가 2주를 할애한다는 건 그만큼 대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의미다.
대만은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 보유국이다. TSMC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전량을 독점 위탁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엔비디아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TSMC는 지난해 4분기 기준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6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AI 반도체의 최강자인 엔비다아와 대만의 파트너십이 강화될수록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 속에서 대만의 영향력은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대만을 차세대 AI 기술 개발 기지로 점찍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AMD는 50억대만 달러(약 2100억원)를 투자해 아시아 첫 R&D 센터를 대만에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고, 엔비디아는 현재 건설 중인 아시아 최초의 ‘AI 혁신 R&D 센터’에 이어 두번째 R&D 센터 설립을 검토 중이다. 구글도 지난 4월 대만의 두번째 하드웨어 R&D 센터를 오픈했다.
대만을 방문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0일 타이베이 야시장을 찾았다가 몰려든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젠슨 황은 모국인 대만에서 유명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합] |
한국으로서는 대만의 부상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TSMC와 50%포인트 가량 격차가 벌어졌다. 대만과 달리 빅테크 기업들의 R&D 투자도 여전히 미흡하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2년 10나노 이하 첨단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의 생산 비중은 47%인 반면, 한국은 9%로 크게 추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젠슨 황 CEO는 오는 4일 열리는 컴퓨텍스 개막식에서 라이칭더 대만 총통과도 만날 예정이다. 대만 추가 투자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황 CEO는 지난 29일 저녁에는 장중머우 TSMC 창업자, 류양웨이 폭스콘 회장, 린바이리 퀀타그룹 회장, 차이밍중 타이완모바일 회장, 차이밍제 미디어텍 회장 등과 북부 타이베이에서 비공개 만찬을 함께 했다.
그는 식당에서 나온 후 취재진에게 “AI로 인해 IT 산업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만에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대만이 계속해서 전세계 과학 기술 산업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