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령아동’ 실태조사 어디로…법무부·복지부 8개월째 ‘떠넘기기’[무국적 청년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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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20년의 ‘추방 카운트다운’을 세는 이들이 있다. 미등록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대 자녀들이다. 교육권이 보장되는 청년기가 지나면 취업 혹은 유학 비자를 택할 수 있지만 ‘바늘 구멍’이고, 이마저 5년짜리 한시적 대책이다.

미등록 외국인을 ‘불법체류’로 볼지, ‘필요인력’으로 볼 지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 세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친구들과 인생네컷을 찍고, 블랙핑크를 좋아할만큼 한국인 정체성이 크다. 부모가 떠나도 자신들은 한국에 남겠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현행법 안에선 방법이 없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인구 감소가 가파르다. 그만큼 외국인 인력 유치도 가장 시급하다. 하지만 정작 국내 체류 미등록 외국인을 둘러싼 논의는 가장 후진적이다. 90~00년대 유입된 미등록 외국인들의 자녀는 지금 하나둘씩 청년이 되고 있다. 이들의 정착 필요와 그 방안을 고민해볼 시기다.

〈무국적 청년들(下)〉 – 지금도 태어난다

[헤럴드경제=박혜원·박지영 기자] 부모가 출생 신고를 누락한 이른바 ‘유령아동’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도 한 차례 실태조사를 이미 완료했지만 정작 결과 발표는 8개월째 부처 간 ‘떠넘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아동에 대해선 최근까지 1만2000여명 규모로 4차례에 걸친 조사를 마치고 ‘출생통보제’ 입법까지 이끌어낸 것과는 반대되는 대처다.

‘유령 외국인 아동’ 실태조사…법무부·복지부 8개월째 ‘떠넘기기’
법무부가 외국인 미등록 아동 실태조사 결과 발표 질의에 제출한 답변 자료. [남인순 의원실]
보건복지부가 외국인 미등록 아동 실태조사 결과 발표 질의에 제출한 답변 자료. [남인순 의원실]

4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8월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임시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외국인 아동 4000여명에 대한 소재 파악 등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복지부에 넘겼다. 그러나 해당 조사에 대한 결과 발표 여부나 및 후속 대책 마련 주관 부처는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별도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법무부는 최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서 “우리 부는 2023년 8월 23일~10월 6일 임시신생아번호 외국인 아동 소재·안전 확인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3년 10월 13일 조사 결과를 보건복지부 주관 범정부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이하 추진단)’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복지부는 남 의원실이 외국인 유령아동 실태조사 발표 계획을 묻자, “‘임시신생아번호 외국인 아동 소재·안전 확인을 위한 실태조사’는 법무부에서 실시한 것으로 조사 결과는 법무부에서 발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에 재차 실태조사 결과 여부에 대해 질의했으나 “통보한 실태조사 결과를 법무부 자체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며 “자체 브리핑, 보도자료 배포 등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령아동 실태조사 주관 부처는 복지부와 법무부다. 감사원이 복지부 대상 정기 감사 과정에서 출생 등록 없이 임시신생아번호로만 남은 위기 아동들의 규모를 파악한 결과 8년(2015~2022년)간 6000여 사례가 발견됐다. 그리고 이중 70여%가 외국인 아동이었다.

이후 복지부가 지난해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추진단을 꾸렸고, 지난해 7월 1차 전수조사를 마친 뒤 법무부를 통해 2015년 이후 태어난 외국인 아동 소재도 파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 조사를 벌인 지 8개월이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결과 발표가 별도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외국인 아동을 대상으로 한 별도 후속 대책 역시 없다.

국내 유령 아동은 1만2000명 실태조사…출생통보제 입법도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4차 회의를 열고 임시신생아번호 외국인 아동 등에 대한 추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복지부 홈페이지]

국내 유령 아동을 대상으로는 그 사이 1만2000여명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이어졌다. 복지부가 꾸린 추진단은 지난해 7월 1차 실태조사(2123명)을 시작으로 2차(9604명), 3차(2547명), 4차(45명)을 출생 시기로 나눠 소재 파악을 진행했다. 이를 거쳐 소재 파악이 되지 않은 3389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738명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가장 최근 이뤄진 4차 조사 발표는 지난달 4월 30일이었다.

유령아동 문제를 계기로 마련된 ‘출생통보제’도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 신고를 누락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 장치를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미등록 외국인 아동에겐 출산통보제도 의미가 없다.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병원에서 태어났더라도, 병원이 이 사실을 통보할 곳이 없다. 정식 거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는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담당하지 않고, 법무부도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2년 6월 남인숙 의원과 2023년 6월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으나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남인순 의원은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동의 소재와 안전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난 아동에 대한 책임 회피”라며 “이제라도 정부는 전수조사 결과를 명백히 밝히며 모든 출생 미등록 아동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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