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당시 편의점 내부 CCTV 화면(왼쪽)과 폭행을 말리다 다친 50대 피해자.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지난해 11월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 B씨가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숏컷을 한 20대 여성 아르바이트생 A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 4월 법원은 B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피해자 A씨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던 B씨가 재판부에는 무려 7차례나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심신미약'이라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는데, 항소심을 앞둔 A씨는 B씨의 반성문을 보려 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법원이 피해자가 볼 수도 없는 반성문을 보고 감형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A씨는 B씨의 항소심 공판을 앞둔 지난 달 24일 법원에 1심 재판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재판 내내 한 번도 A씨에게 사과하지 않은 B씨가 재판부에 7차례나 제출했다는 반성문 내용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A씨가 받은 기록물에는 가해자가 쓴 반성문, 최후 의견진술서가 모두 빠져 있었다. '심신미약'을 주장한 의중을 파악하고자 정신감정서도 열람을 신청했지만 불허됐다.
그런데 A씨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가 소송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지를 재판장 재량에 맡겼다. 재판부가 이를 불허해도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할 방법은 없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이유로 형사사법 체계는 피해자의 권리와 요구를 제한해 왔다.
실제로 법원 관계자는 "보통 반성문은 잘 허가가 나지 않는다. 원래 관행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당사자의 알 권리 침해, 절차상의 피해자 배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사과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반성문은 7건이나 제출됐다"며 "피해자가 읽을 수 없는 반성문으로 감형을 결정하는 것이 정의로운지, 피해자가 배제된 채 재판부에만 구하는 용서가 옳은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가 가해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다면 그나마 법적 대응도 어려워진다"며 "현행 사법 체계에서 피해자는 그저 재판의 관객일 뿐이냐"고 반문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피해자의 재판기록 열람권을 강화하고자 법원이 소송기록 열람을 거부한 결정에 대해 피해자가 불복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지난 달 폐기됐다.
앞서 교제관계인 여성을 감금·성폭행한 ‘바리캉 폭행’ 사건 가해자도 재판부에 하루 한번 꼴로 반성문을 냈지만, 피해자에게는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재판기록 열람이 불허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공분이 일기도 했다.
바리캉 폭행 사건 피해자 등을 대리한 조윤희 변호사는 "피해자도 반성문·사과문을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