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4일 서울 종로구 연건캠퍼스에서 총파업 논의를 위한 총회를 하고 있다. 총회는 온라인 참석과 병행해 열렸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내린 업무복귀 명령을 철회했다. 병원장들의 사직 수리도 가능해졌다. 복귀 전공의들에겐 행정처분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여전히 귀환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에 대해 일부 대학에선 휴학 장기화 시 ‘제적’을 거론하고 나섰다. 교수들은 의사 후배들과 보폭을 맞추며 ‘휴진 확대’에 돌입할 태세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을 기점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의료 갈등 양상은 ‘1년 이상’ 계속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의료 붕괴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의대 교수들 6일까지 일괄 휴진 투표
서울대 의과대학과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당초 5일까지로 예정됐던 총파업 투표를 6일까지 실시키로 했다. 의대 교수들이 총파업에 동참할 경우 현재 주 1회 휴진을 하는 것에 보태 아예 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전체 휴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투표 시간을 하루 더 늘린 것은 전체 휴진에 대한 정당성 확보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4일 오후 5시까지 파악된 총파업 찬반 상황은 대략 ‘찬성 비율이 6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들이 투표일을 하루 더 연장한 것은 정부의 발표 방안에 대한 분석에 일부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일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 및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해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문제는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해선 ‘행정처분을 하지 않는다’는 발표는 없었다는 점이다. 복귀 전공의는 선처하되, 미복귀 전공의는 예정대로 행정처분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다.
전날 서울의대 총회에 참석한 교수는 “정부가 복귀한 전공의가 전문의를 딸 때까지 행정처분을 중단한다는 건, 앞으로 전공의들이 다시 들고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냐”며 “오늘 복지부 장관이 발표한 내용을 좀 더 숙지하고 총파업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더 많은 교수들의 의견을 모으고자 기간을 연장한 것”이라며 “현재까지 진행된 투표에서는 65%가 휴진에 동의했으나 더 많은 교수들의 참여를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안팎에선 교수들의 총파업 방식은 응급실과 중환자실이나 분만, 신장 투석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적인 분야를 제외한 전체 진료과목의 외래와 정규 수술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기존에 개별적으로 참여했던 휴진과 달리 필수 의료 분야를 제외한 전체 교수들이 한 번에 휴진하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연 '의정갈등을 넘어 미래 의료 환경으로' 심포지엄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
▶전공의 대표 ‘뭐라 지껄이든’… 미복귀 기류↑
정부가 복귀하는 전공의와 미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에 수위를 달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전공의 대표격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미복귀’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정부의 사직서 수리 등 발표가 나온 직후 “업무개시명령부터 철회하라.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고. 아니면 행정처분을 내리든가”라며 “사실 이제는 뭐라고 지껄이든 궁금하지도 않다. 전공의들 하루라도 더 착취할 생각밖에 없을 텐데”라고 했다. 그는 또 “달라진 건 없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잡아가세요?”라고 썼다.
전공의들 내부 분위기도 아직은 복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파악된다. 한 수도권 병원 사직 전공의는 “다른 병원 전공의들끼리도 얘기를 해봤는데, 복귀는 거의 안하는 분위기”라면서 “정부의 의료정책이 계속 추진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복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전공의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1만509명 중 9630명(91.6%)이 여전히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사직서 수리 권한을 각급 병원장들에게 넘기면서 이탈한 전공의들이 다른 병원에 취업하거나 일반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이탈 전공의들이 기존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고 보는 분위기가 많다.
충북대 의대 교수·학생 등 50여명이 21일 오후 학칙개정안을 심의하는 교무회의가 열리는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5층 대회의실 앞 복도에서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
▶의협, 6월 촛불 ‘강경화끈한 투쟁’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4일부터 오는 7일까지 나흘간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해 회원들의 총의를 확인중이다. 또 의협은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후 오는 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해 의료계 투쟁 동력을 결집할 계획이다. 이날 의대 교수, 봉직의, 개원의는 물론 전공의, 의대생 등이 의협을 중심으로 뭉쳐 대정부 투쟁을 선포한다.
의협은 정부가 수련병원과 전공의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업무개시명령 등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의료농단, 교육농단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의료 정상화를 위한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국민 앞에 드러냈다”고 평가 절하했다. 의협은 “아무런 근거 없이 2000명 의대정원 증원만 고집하며 일으킨 의료 사태의 책임을 각 병원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부를 사직한 전공의들이 어떻게 믿고 돌아오겠느냐”고 지적했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전국적인 상황에서 사실상 ‘퇴학’을 의미하는 제적 처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학교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충북대학교 고창섭 총장은 의대생들이 주장하는 휴학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했다. 고 총장은 또 수업을 거부중인 의대생들에 대해 F학점으로 유급될 수 있으며, 2학기에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제적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재입학이 불가한 제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고 총장의 이같은 의사는 지난 3일 학생들에게 전하는 안내문을 통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