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있는 걸프협력회의(GCC) 사무국에서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은 최초다. 여기엔 중동 지역 내 중국 영향력을 차단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전략이 담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미국과 사우디 관리들을 인용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상호방위조약) 초안이 거의 완성됐으며 대부분 조항에 대한 개념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양국은 테러리스트나 이란을 포함한 공동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 판매나 정보 공유를 강화하는 국방협력 협정 초안도 작성 중이다.
양국 간 상호방위조약은 미일 안보조약을 모델로 구상됐다. 사우디가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방어에 나서는 대신 미국이 자국 이익과 지역 파트너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로 할 때 사우디가 영토와 영공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중국이 사우디 내에 기지를 건설하거나 안보 협력을 추구하는 것도 금지한다. 사우디는 지난 202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는 등 급속히 가까워졌다.
아론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미국이 법적 효력을 갖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1960년 일본과의 안보조약 이후 처음이며 권위주의 국가와 이런 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상호방위조약은 아랍 국가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동 지역을 안정화하려는 미국의 큰 그림의 일부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잡기 위해서는 미국의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WSJ는 “이번 조약은 전략적 동맹협정으로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비준된다”면서 “결국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사우디의 분명한 약속이 없으면 의회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 봤다.
문제는 팔레스타인의 지위에 대한 합의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국가 형태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요구하는 반면,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WSJ는 “외교적 노력이 성공하려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분리 국가를 약속하고 가자 지구 전쟁 을 끝내야 한다”며 “수개월 간 결실을 얻지 못한 휴전 회담이나 인질 구출을 위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비춰볼 때 이는 가능성이 희박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양국 관리 역시 가자지구 휴전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공식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휴전 없이 광범위한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WSJ는 “미·사우디 안보 동맹과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메가 딜’은 미국의 지정학적 승리를 의미한다”며 “이에 성공한다면 가자 전쟁 과정에서 친 이스라엘 정책으로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를 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외교 정책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