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파워 창업자 빌 게이츠(왼쪽 네번째)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왼쪽 다섯번째), 마크 고든 와이오밍 주지사 등이 10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테라파워 4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실증단지 착공식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SK㈜ 제공] |
SK가 투자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실증단지 건설의 첫 삽을 떴다. 4세대 SMR 착공에 나선 것은 테라파워가 미국 기업 중 최초다.
테라파워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착공식을 열고 4세대 SMR 원자로인 ‘나트륨(Natrium)’을 포함, 전력 생산 장비 등 기타 제반 공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실증단지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버핏이 소유한 전력회사 파시피콥의 석탄화력발전소 부지 내에 약 25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인 345메가와트(㎿)급 단지로 구축된다. 이번 SMR 건설 위치는 2025년 폐쇄 예정인 기존의 석탄 화력발전소 인근이다.
테라파워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최대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절반은 미국 에너지부(DOE)에서 지원한다. 테라파워는 2030년까지 SMR 실증단지를 완공하고 상업운전까지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이날 착공식에는 테라파워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 유정준 SK온 부회장 겸 SK아메리카스 대표, 김무환 SK㈜ 그린부문장 등 주요 경영진이 참석했다. 빌 게이츠는 “이 차세대 발전소가 우리나라(미국)의 미래를 움직일 것”이라며 “우리의 경제와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더 풍부한 청정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당시 약 3000억원)를 투자해 선도 투자자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실증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SK는 테라파워와 함께 아시아 사업 진출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무환 SK㈜ 부문장은 “테라파워는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 민간기업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상업화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며 “향후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원자로 냉각재로 물 대신 액체금속, 가스 등을 사용하는 4세대 비경수형 원전이다. 원자로는 높은 온도에서 작동될수록 발전 효율이 높아지는데, 물을 사용하지 않는 4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월등히 높은 온도에서 가동이 가능하다. 물을 사용하지 않아 유사시 오염수가 발생할 우려도 없다. 또 미국 에너지부(DOE)로부터 지원을 받는 만큼 상업화 속도전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MR은 기존 원전에서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인 소형 원전이다. 부지 규모가 작고 안정성이 높아 도시와 산업단지 등 전력 수요처 인근에 구축하기 유리하다. 건설 시간과 비용 모두 기존 원전 대비 대폭 줄일 수 있어 미국은 물론 한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원전 기술 강국들은 SMR 개발 및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전 세계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SMR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주목 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기구(IEA)가 발간한 세계전력발전보고서는 전 세계 전력 수요가 2026년까지 연평균 3.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데이터센터, 암호화폐 부문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해당 분야의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은 1000TWh(테라와트시)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일본이나 네덜란드, 스웨덴과 같은 국가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규모다.
AI 시대 전력을 꾸준히 공급해줄 수 있는 에너지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친환경 에너지원인 풍력, 태양광 등은 기후 변화에 따라 전력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 화력 발전은 대량의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SMR은 24시간 가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염물질 배출도 기존 화석 연료 대비 적다는 평가다.
이같은 장점으로 SMR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8조5000억원에서 2035년 64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세계원자력협회는 전망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큰 SMR 시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SK는 물론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도 뛰어들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손잡고 SMR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창원에 글로벌 1호 SMR 전용공장을 구축했다. 정윤희·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