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515억 기부한 회장님, 이유 뭔가했더니…“부 대물림 않겠다”

故정문술 KAIST 전 이사장.[KAIST 제공]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 (2013년 1월10일,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515억원을 학교에 기부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12일 오후 9시30분께 숙환으로 눈을 감았다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알렸다. 향년 86세.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를 이끈 거목이 먼 길을 떠나게 됐다.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출생한 고인은 남성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 중 5·16을 맞았고, 혁명군 인사 총무 담당 실무진으로 있다가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다.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광대 종교철학과)을 다닌 고인은 1980년 5월 중정의 기조실 기획조정과장으로 있다가 실세로 바뀐 보안사에 의해 해직됐다.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 당했는가 하면, 어렵게 설립한 풍전기공이란 금형업체도 대기업의 견제로 1년을 못 견디고 문을 닫아야 했다.

고인은 저서 '왜 벌써 절망합니까'(1998)에서 당시 사채에 쫓겨 가족과 최악의 선택까지 할 뻔 했었다고 전한 바 있다.

고인은 1983년 벤처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일본의 퇴역 엔지니어를 영입, 반도체 검사장비를 국산화해 돈을 벌었다. 반도체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970년 중앙정보부 근무 시절 일본에 갔다가 산 도시바의 트랜지스터 단파 라디오에 적힌 'IC' 글자를 보면서였다고 책 '왜 벌써 절망합니까'에 썼다.

이후 무인검사장비 개발에 나섰다가 그간 번 돈을 날리는 고비도 겪었지만, 국산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기록했다.

반도체 장비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로 자리를 잡은 후 1999년 11월에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나스닥에 상장해 '벤처 1세대'로도 불렸다. 2001년에는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 마디와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섰다.

고인은 통 큰 기부 행보를 보였다.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했고, 2013년에 다시 215억원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에 기여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카이스트 정문술 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 빌딩도 지었다.

고인은 2013년 1월10일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국민은행 이사회의장, KAIST 이사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상을 받았다.

유족은 양분순 씨 사이에 2남3녀가 있지만, 2남3녀를 회사(미래산업)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