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서린사옥 [SK 제공] |
“SK가 노태우 전 대통령 지원으로 성장했다는 판결에 불쾌”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재판부가 재산 분할 배경으로 SK 성장이 정경유착의 산물이라고 밝혀 SK 직원들의 허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그룹 성장에 기여한 직원들의 노고가 짓밟혔다며 재판부를 향한 설움도 커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2심 재판부가 “SK그룹 성장 배경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지원이 있었다”고 판단한 데 대한 직원들의 불쾌감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임직원 노력으로 이룬 성과가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SK그룹이 이혼소송 2심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그룹의 향후 대응 전략을 밝힌 것도 임직원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그룹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직원들끼리도 ‘정경유착’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SK그룹 한 직원은 “이혼소송 2심 판결이 나온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블라인드 사내 게시판 등에서는 관련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연말 인사 단행 후 고강도 사업구조 재편과 함께 이혼소송에 따른 1조4000억원 수준의 재산 분할 가능성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계열사 매각 이슈도 끊이질 않고 있다.
연초 SK온 투자자금 확보 이슈가 부각됐을 때는 SK온·SK엔무브 합병설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설이 등장했다. 이혼소송 2심 판결 이후에는 반도체 웨이퍼 사업을 하는 SK실트론 지분 매각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만약, 최악의 경우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배구조다. 최 회장이 보유한 재산의 대부분이 주식인 만큼, 일정 수준의 지분 정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SK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지 않은 터라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최 회장의 ‘현금 마련 방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계와 증권가에서 최 회장이 지분 매각 카드를 꺼내든다면 SK 지배구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SK실트론의 지분을 팔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성과를 내서 이를 알리기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매각을 위한 몸값 띄우기로 해석할 수 있는 만큼 매각 후보군으로 등장했던 회사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룹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SK 직원들의 우려도 높아졌다. SK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A씨는 “판결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당장은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SK 계열사에 근무하는 B씨 역시 “매일 어디 어디가 팔릴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니 대놓고 말은 못해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술렁이는 분위기는 있다”고 전했다. 일련의 사태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직원들도 있다. 또다른 SK 계열사 C씨는 “반도체 시장이 올해 살아나고 있는 만큼 직원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SK에 대한 각종 추측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SK는 28일부터 이틀에 걸쳐 경기도 이천 SKMS 연구소에서 경영전략회의(옛 확대경영회의)를 진행한다. 올해 경영전략회의에서는 그룹 고유 경영철학인 ‘SKMS(SK 매니지먼트 시스템)’ 내실화가 화두인 가운데 사업 재편 작업인 이른바 ‘리밸런싱’에 대한 방향성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SK온과 SK이노베이션 계열의 에너지 자회사에 대한 재조정 작업의 윤곽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사업 구조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나온다면 SK를 둘러싼 각종 소문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정윤희·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