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을 ‘인디언’이라 말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 [요즘 전시]

프리츠 숄더(루이세뇨족), 인디언의 힘, 1972년, 173.1×203.6㎝, 덴버박물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인디언’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머리를 뾰족한 깃털로 장식한 추장이나 삼각뿔 형태의 어린이 텐트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더라도 살던 곳에서 ‘쫓겨난 원주민’이라는 생각에서 멈추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런 상식을 깼다. 미국 덴버박물관과 이른바 ‘인디언 없는 인디언’ 전시를 공동 기획하면서다. 한국보다 42배가 넘는 넓은 미국 땅에만 570여 개의 부족이 살고 있는 이들을 인디언으로 통칭해 획일적으로 본다는 데서 문제의식이 출발했다.

콰콰케와크족 원주민, 구리 방패 깨뜨리기 의식에 사용된 기둥, 1900년 이전, 높이 93.98㎝,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18일 시작하는 특별전 제목이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인 이유가 여기 있다. 전시장에서는 인디언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인디언은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붙여졌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래 전부터 그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인디언이 아닌 ‘북미 원주민’으로 지칭했다.

전시는 북미 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한 최초의 박물관이자 관련 소장품만 1만8000점에 이르는 덴버박물관에서 151점을 엄선해 꾸려졌다. 덴버박물관에는 북미 원주민 예술품 관련 전시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 최초로 열리는 북미 원주민 전시”라며 “인디언 하면 떠올리는 단편적인 모습을 넘어, 깊이 있고 풍부한 문화와 역사를 갖고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애니 분(포모족), 새의 깃털로 장식한 바구니, 1900년대 초반, 지름 27.1㎝, 덴버박물관.

전시는 크게 두 축으로 이뤄졌다. 도입부는 기후와 지리적 특징에 따라 다른 색을 가진 북미 원주민들의 다양성이 드러나는 작품, 이후에는 유럽인이 북미 대륙으로 건너오면서 달라진 원주민들의 삶이 반영된 작품이 펼쳐진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고 믿은 북미 원주민들의 공통된 믿음을 반영해 원형으로 빙 둘러싸는 방식으로 진열됐다.

전시는 놀라울 정도로 부족마다 지키고자 한 각기 다른 전통들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없는 이들이 만든 공예품은 저마다 세계관을 담아내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실제로 흙먼지가 날리는 건조한 남서부 평원에는 그릇을 잘 만드는 지아족·주니족·호피족과 직물을 만드는데 능숙한 나바호족이 모여 살았다. 태평양의 따뜻한 공기가 어우러지는 캘리포니아에는 요쿠츠족과 포모족이 계절마다 다른 새의 깃털로 바구니를 만들었다. 따뜻하고 습한 기후를 가진 남동부는 강렬한 태양처럼 화려한 옷을 즐긴 세미놀족의 터전이었다.

에드워드 커티스, 압사로가족 어머니와 아이, 1908년, 미국국회도서관.
에드워드 커티스, 덮개 짜는 나바호족 직고종, 1905년, 미국국회도서관.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에드워드 커티스(1868~1952)가 연출해 찍은 원주민의 사진, 사우스다코다주 운디드니라는 곳에서 원주민 약 300명이 미국 군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비극적인 사건을 담아낸 프리츠 숄더(1937~2005)의 회화도 만날 수 있다. 북미 원주민들은 낯선 땅에 정착한 이주민을 도와주며 조화를 추구했지만, 평화로운 공존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비극적 역사가 짙게 그리워진 작품들은 현재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의 존재를 일깨운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순회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10월 9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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