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젊은 부인 안나 카레리나는 오빠와 올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마중 나온 젊은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을 맡은 안나 카레리나(1997) 영화의 한 장면 |
레프 톨스토이(1828. 9 ~ 1910.11)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과 마리야 톨스타야 백작부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서 자랐다. 카잔 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서라고 한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 빚을 많이졌다. 1910년 11월 어느 간이역에서 “진리를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미모의 젊은 부인 안나 카레리나는 20살 연상의 냉정한 고위 공무원인 남편 카레닌, 아들 세로지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대저택에서 호화스러운 귀족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빠와 올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마중 나온 젊은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모스크바의 상류층 무도회에서 다시 만난 안나와 브론스키는 함께 춤을 추면서, 서로에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브론스키는 오직 안나와의 사랑을 위해 자기의 모든 걸 내던진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동거하면서 극도의 행복한 자신을 느낀다. 그녀는 이혼하면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혼도 하지 못한 채 브론스키와의 불륜 관계에서 딸을 낳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러시아 사교계에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브론스키의 경력은 치명타를 입는다. 모성애와 사랑 사이에 번민하던 안나는 주위의 시선과 변해가는 브론스키의 사랑에 절망하다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소설에서 따온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란 게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즉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여러 가지 필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만약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행복한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문명 발전, 기업 경영, 국가행정 등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행복한 것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 더 다양하다면, 퓰리처상을 수상한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가축이 될 수 있었던 동물보다 가축이 될 수 없었던 동물이 더 다양하다면, 우리는 경제에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경영학의 대가인 짐 콜린스는 자신이 위대한 기업으로 극찬했던 기업들이 2008년 금융위기로 줄도산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위대한 기업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기업이 위대해지는 것보다 몰락하는 길이 더 다양했다. 기업이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위기 진단과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국가 경제도 가정도 당연히 서로에 대한 헌신과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어찌 그게 말처럼 쉽나.
시애틀에 본사를 둔 아마존. 2019년 초 이혼을 결정한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긴 사랑의 여정과 별거 시도 끝에 아내 맥킨지와 이혼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소설가 아내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약혼하고 약혼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의 아내는 소설가였으나 그와 결혼한 후 베이조스 회사의 첫 회계사가 된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다. 25년간의 사랑 끝에 찾아낸 이혼의 원인은 놀랍게도 베이조스의 불륜이었다. 베이조스와 맥킨지는 투자운영회사의 면접관과 면접 대상으로 만났다. 당시 제프 베이조스는 부사장이었다. 맥킨지가 연구요원으로 선발된 후 그들은 옆 사무실에 근무했다. 결혼 전 그들의 서로에 대한 느낌을 들어보자.
“맥킨지는 재치가 있고, 머리가 좋은 여자였어요. 면접하기 전 그녀의 레쥬메를 보았고 SAT 성적을 보았죠.”
제프는 처음부터 재치 있는 여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맥킨지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하루 종일 베이조스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노년의 톨스토이 |
25년간의 관계를 파탄시킨 게 불륜이라는 단어라고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마존의 미래와 위자료의 천문학적 액수에 관심 두게 됐다. 억만장자가 되기 이전에 맥킨지는 네 아이를 등교시키고 베이조스를 혼다차로 회사까지 내려줬다. 베이조스가 처음 사업 구상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자신이 사업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맥킨지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었고 아마존을 창립하기 위해 시애틀로 갔다. 소설가인 그녀에겐 글을 쓰는 작은 아파트가 있었다. 그곳에서 글을 쓰다 아이들 학교에 가서 데려오곤 했다. 그녀의 글을 가장 잘 읽어 주는 남자가 베이조스였다. 베이조스는 실제로 맥킨지의 첫 소설 원고를 읽기 위해서 다른 계획을 멈출 만큼 그녀에게 헌신적이었다. 물론 작품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 그녀는 남편에게도 원고를 읽지 못하게 하였다. 소설을 다 쓴 후 소설 속 인물의 성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그들의 즐거움이었다. 맥킨지와 베이조스의 성격은 서로 보완적이었다. 베이조스는 호탕한 웃음만큼 사교성이 풍부한 남자였고, 맥킨지는 칵테일 파티에서도 긴장할 만큼 다른 성향의 여성이었다. 베이조스는 비행 도중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옷 사이즈를 묻던 다정한 남자였다.
베이조스에게서 보듯이 불륜은 세 가지 정도의 개념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비밀스러운 관계, 감정의 교류, 성적인 매력 말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상대에 대해 매력을 풍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 것도 흔할 수 있다. 만약 베이조스의 불륜으로 맥킨지가 트라우마를 갖고 자아의 상처를 입는다면, 그녀가 너무 안 돼 보인다. 누군가는 베이조스의 일탈을 엄청나게 비난할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게 한 야비한 인물이라고 말이다.
베이조스가 불륜을 저지른 상대는 로렌 산체스. 베이조스의 이혼 발표 시 그녀 역시 이혼 소송 중이었다. 폭스TV 앵커 출신인 그녀는 헬리콥터 조종사다. 베이조스는 우주여행 기업인 ‘블루오리진’과 관련된 업무를 산체스에게 맡겼다. 베이조스는 항공사진 촬영을 위해서 헬리콥터 면허가 있는 산체스를 고용했는데, 함께 일하면서 새로운 사랑이 싹튼 것이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니 산체스가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고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사랑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운명으로 결합하는 것으로 의미했을까? 성경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경제학자에게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새로운 사랑도 선택이다.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하는 경제학자들을 누구는 비난하나 엄연히 사랑을 유지하는 편익보다 헤어지는 편익이 크다면 둘은 갈라서기가 쉬울 수 있다. 불륜남 제프 베이조스는 부인인 맥켄지 베이조스에게 미화 350억달러(한화 약 47조원)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지급했다. 그는 헤어지며 이런 말을 했다.
“헤어질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후회 없는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찾아낸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부모, 친구, 동료로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유렵 국가의 이혼제도는 다르다. 이혼을 원할 때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이 과실을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이를 파탄주의라고 한다.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그것 자체로 이혼이 성립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결혼은 원하면 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의 과실이 입증되어야 하며 귀책 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법원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은 흔히 두 사람의 사랑이란 결실로 성립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재정과 양육의 문제를 남긴다. 재산을 어떻게 나누고 자녀의 양육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 이혼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게 된다. 이혼 가정의 자식은 경제적 수준이 현격히 떨어졌다고 경제학자들은 주목한다. 미국에서 이혼한 가정의 자식들은 고등학교 중퇴율이 일반 가정의 자식들보다 두 배 정도 높다는 기록이 있다.
가정 경제만 보면 이혼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노력이야말로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을 방지하는 것이라면 너무 쉬운 말일까. SK그룹을 이끄는 최태원 회장이 현재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 소송 중에 있다. 2015년, 최 회장이 미국 국적의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내연 관계를 밝히며 노 관장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베이조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노 관장은 줄곧 최 회장과 이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2019년 입장 바꿔 최 회장에게 맞소송을 제기했다. 세기의 이혼 소송은 서막을 알렸다. 2심 판결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나눠야 하는 재산 범위가 조 단위로 늘어났다.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지적하며 최 회장이 유책배우자이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열정에 유통기한이 있는 게 대부분의 삶이나 불륜으로 인한 고통과는 단절하는 게 도리이다. 억만장자와 이혼한다면, 그 또한 다를 바 없으리라. 불륜은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행복한 부부라도 지나가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맨다면, 그 배신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 상처는 깊을 수밖에 없다. 그게 살아있음의 대가라면 더욱 그렇다. 새로운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는 게 사회적 관념이라면, 갈망의 대가는 치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