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30년까지 출산율 1.0명 달성’이라는 출산율 목표도 다시 내걸었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됐던 300개 넘는 출산 관련 정책은 60개로 집중됐다. ▶관련기사 4·5면
윤 대통령은 앞으로 매달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해 저출생 대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도 내보였다.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의 세금을 쏟아붓고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저출생 정책을 걷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저출생 종합 대책’은 과거의 백화점식 정책으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에서 나왔다. 공급자 위주의 정책에서 수요자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한 명이 낳으리라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지난해 0.72명까지 떨어졌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합계출산율 1.0명에 못 미치는 유일한 국가다. 전세계 인구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는다.
윤 대통령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대한민국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구전략 기획부 출범 전까지 ‘인구 비상 대책 회의’를 개최해 철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4차에 걸친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수립해왔지만, 이번 대책은 지금까지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인구정책 예산을 별도로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컨트롤타워가 신설됐다는 점이다. ‘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어 성과가 뚜렷한 정책에 예산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전담부처인 인구전략기획부와 대통령실 내 저출생수석실을 신설한다. 새 컨트롤 타워는 인구정책 관련 세입·세출을 정해두고 해당 예산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인구위기대응특별회계‘(가칭)를 운용한다. 지방교부세 교부기준을 저출생 대응 관점이 반영되도록 보완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기반시설 조성·활용 여부에 상관없이 사용될 수 있도록 사업 범위를 조정한다.
저출생 대응 예산사업에 대한 사전심의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심의제가 도입되면 ‘막강한 권한’을 쥔 컨트롤타워로 거듭난다. 지금까지 우리 재정당국의 ‘저출산 예산’은 범위는 매우 넓었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가족여가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교육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교의 학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 사업’ 예산까지 모두 저출산 예산에 포함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군 입대자가 줄어드는 만큼 첨단무기를 늘려야 한다며 987억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반영한 적도 있다.
OECD 등 국제기구가 육아나 보육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만 저출산 예산으로 지칭하는 것과 달리 저출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면 모두 해당 예산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새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에 나서면 이런 ‘가짜 저출생 사업’을 걸러내고 ‘실효를 거둘 정책’에 예산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30년까지 합계 출산율 1.0명’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일·가정 양립, 교육·돌봄, 주거·결혼·출산·양육 등 세 분야 15대 핵심 정책을 꺼냈다. 육아휴직 급여를 최대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까지 대폭 인상하고, 2주 단기 육아휴직을 도입하는 동시에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요건을 연 1억3000만원 이하에서 2억5000만원 이하로 완화하는 등 결혼부터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걸림돌’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