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북한을 방문한 이후 베트남을 공식 방문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고정밀 무기를 제공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이어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과의 밀착으로 맞대응에 나서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베트남 순방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무기를 공급할 권리를 갖고 있다”며 “북한과의 합의를 고려할 때 이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9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북러 조약)을 체결하면서 상호 관계를 격상시켰다.
20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조약 전문에 따르면 제4조에는 북한과 러시아 중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상대에게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자동 군사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으로 양국 간 동맹 관계가 28년 만에 복원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조약상 군사적 원조는 오직 침공, 군사적 공격이 있을 때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북한과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무역과 투자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경고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러시아와 평양의 도발에 대응하는 서방 국가들의 위험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첨단 무기 제공에 대한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사용 방식에 대해선 통제하지 않는다”며 “우리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이 서방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 군인을 투입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어떻게든 서로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해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원을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면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일(무기 제공)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의 현 지도부가 달가워하지 않는 결정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핵 교리(독트린)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의 군사 교리는 핵무기 공격에 대응하거나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 무기 공격에 대응할 때에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를 완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잠재적 적들(서방과 동맹국)들이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것과 관련된 새로운 방침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도 이에 대응해 핵 교리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며 “특히 극저출력 폭발성 핵 장치가 개발되고 있고, 서방 전문가 집단에서 이러한 파괴 수단이 사용될 수 있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 군사 전략가들 중 일부 매파들은 “러시아가 군사·핵 교리를 수정하고 심지어 서방의 적국들을 잠재울 수 있는 일종의 핵 공격을 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한 이후 러사아 핵 무기고의 크기와 잠재력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서방이 전쟁에 더 깊이 개입하면 세계적인 분쟁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