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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직계혈족, 배우자 등 친족 간에 벌어진 횡령, 절도 등 일부 재산 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7일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법불합치란 위헌 판단을 하면서도 혼란을 피하기 위해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국회가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
친족상도례는 가족 간의 범죄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 관습에서 유래됐다. 배우자, 직계혈족, 동거친족 등 친족 간의 일부 재산 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거나,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정한 규정이다.
청구인 A씨 등은 “친족상도례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 등을 청구했다. 청구인들은 삼촌, 사촌, 배우자 등에게 횡령, 사기 등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수사기관을 찾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들의 사건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친족이라 친족상도례가 적용된다는 이유였다.
헌재에서 A씨 등은 “친족상도례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보호의무에 어긋난다”며 “친족과 가족의 구조, 문화가 변화한 지금은 입법 목적의 정당성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히려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가족 간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가족제도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가족 간 개념이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였다.
헌재는 “과거 농경시대 대가족 제도 아래선 재산권을 혈연 집단의 공동소유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당시엔 친족의 재산 침해에 대해 가족이 자율적으로 피해를 회복하고, 화해와 용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보편·타당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핵가족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가족의 규모가 축소됐고, 경제활동의 양상도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다”며 “친족 사이에서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공유될 수 있거나, 손해의 회복이 쉽다고 보는 관점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넓은 범위의 친족관계에 적용되는 일률적 형면제는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반적으로 희생시킨다”고 밝혔다.
헌재는 아울러 “피해자가 미성년자거나 정신적 제약이 있으면 가족에게 의존하기 쉽다”며 “경제적 의사결정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면 가족 내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했을 때 헌재는 “친족상도례는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렸다.
실제 그동안 “친족상도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연예인 박수홍씨 가족의 횡령 사건을 계기로 비판 의견이 커졌다. 박씨의 친형은 지난 2월, 박씨의 개인자금 등 61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당시 박씨의 부친이 돌연 “내가 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한 해프닝이 있었다. 이를 두고 친족상도례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박씨의 형은 동거친족이 아니라 친족상도례를 적용받을 수 없었는데, 아버지가 장남의 책임을 대신하며 아무도 처벌받지 않도록 시도했다는 분석이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형사 피해자인 가족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바탕에서 친족 제도의 형식적 유지만을 추구해 본래의 규정 취지와 어긋난 것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