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국립극장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치유사, 힐러, 무당, 마녀, 마법사, 수호자, 위치 닥터, 드루이드, 투앗드다나안, 만신, 샤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예민한 자들이여.” (‘만신: 페이퍼샤먼’ 중)
신과 인간 사이에 선 ‘중간자적 존재’. 땅을 딛고 사는 이들에게 하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무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다. 한도 많고 절망도 많은 ‘불안의 시대’를 어루만지기 위해서다. 국립창극단의 ‘만신:페이퍼 샤먼’은 ‘오대륙 샤먼’들의 치유의 굿판이다.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 2023~2024 시즌의 마지막 작품이자 박칼린 연출가의 첫 창극 도전작이다. ‘오늘의 창극’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국립창극단이 내놓은 신작은 여러 면에서 시의적절했다. 올초 김고은이 무당으로 나온 영화 ‘파묘’ 이후 ‘샤머니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현재 유튜브는 물론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무속신앙이 침투했다. 창극은 지난해 이맘때 시즌 간담회를 통해 제작을 예고했으나, K-샤머니즘 흐름을 탄 덕분에 기대감은 더 커졌다.
뚜껑을 연 ‘만신:페이퍼 샤먼’(6월 26~30일)은 기대보다 실망이 더 컸다. 이 무대는 지난 몇 년 사이 최전성기의 접어든 국립창극단의 ‘창극 신드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국립극장 제공] |
‘만신:페이퍼 샤먼’은 샤머니즘에 할리우드식 히어로 물을 결합한 ‘성장 스토리’다. 주인공은 한국 어딘가에서 ‘특별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소녀 실. 누구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는 영험한 기운이 점지된 ‘슈퍼 샤먼’이다. 한국의 소녀 무당이 전 세계의 억울한 혼을 달래주는 여정이라는 ‘한국형 영웅물‘이다.
이 창극은 불필요하게 길다. 무려 세 시간. 인터미션을 제외하고도 1, 2막으로 각각 80분을 할애한다. 1막에서 ‘슈퍼 샤먼’의 탄생 과정을 그린다면, 2막은 실과 4개 대륙 샤먼들이 억울한 혼을 달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극본은 박칼린과 전수양이 함께 썼다. 전수양은 박칼린과 함께 ‘시스터즈’, ‘에어포트 베이비’ 등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해온 콤비다.
이야기는 소재와 스토리 라인의 독창성과 달리 밋밋하다. 1막은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스토리다.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인해 숨어 살면서도 사람들의 근심걱정을 풀어주고 미래를 예견한다. 누군가의 불운을 ‘눈치 없이’ 풀어내 화를 당하기도 하다. 그러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강신무가 되는 과정이 1막의 주요 줄기다.
실의 신내림 과정엔 많은 시간을 내줬다. 점지되는 순간부터 타대륙 샤먼까지 기운을 감지하는 ‘특별한 자’의 탄생 과정은 사실 신화에 가깝다. 다양한 이름을 가진 샤먼을 ‘예민한 자’로 강조한 순간 이들의 ‘평범성’도 부각됐으나, 애초의 의도는 다른 데에 있었다는 것을 극의 시작과 동시에 알게된다.
지난한 성장 스토리에 과격하게 얹어진 ‘슈퍼 샤먼’의 탄생기는 조악하다. 2024년에 만나는 내림굿은 시간을 역행한 듯 촌스럽고, 해사한 아이 시절부터 샤먼의 길로 접어드는 실(박경민)을 성인 배우 한 명이 보여준 것도 다소 이입이 되지 않는다. 1막에서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존 창극에선 듣기 어려웠던 무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국립극장 제공] |
‘만신:페이퍼 샤먼’은 전반적으로 쉬운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1막에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 구성을 통해 슈퍼 샤먼의 탄생기를 보여줬다면, 2막에선 각 대륙의 아픔을 다루기 위해 4개의 스토리를 삽입한 병렬식 구성을 택했다.
마침내 강신무가 된 실은 다른 대륙의 샤먼과 만나 세계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길을 떠난다. 2막은 북유럽 샤먼 이렌, 아프리카 샤먼 바바카, 인디언 샤먼(미국 원주민) 아이야나, 아마존 샤먼 이카로와 함께다. ‘슈퍼 샤먼’ 실은 다른 대륙의 샤먼들이 풀지 못한 억울함을 매만지며 K-샤먼의 위엄을 보여준다.
창작진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2부에 있었다. 2부에 이르면 박애주의와 평화주의 세계관이 깊이 투영된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인류가 저지른 과오, 서구의 시각으로 적힌 역사의 재편도 일어난다.
구성은 단순하다. 각 대륙의 신들이 차례로 각자의 지역을 방문하면 억울한 영혼이 빙의, 저마다의 사연을 토해낸다. 이 과정에서 전쟁,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간은 물론 인간을 넘어선 종 차별에 환경 문제를 건드린다. 그들의 억울함을 위무하는 존재는 한국인 소녀 무당 실. 우리의 용왕굿으로 수장된 아프리카인을 어루만지고, 씻김굿으로 학살된 인디언 원주민을 위무한다. 분단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통일하지 말고 계속 싸우라”며 분단 상황을 조롱한다. 다소 생뚱맞게 삽입된 스토리였다.
각 대륙마다 ‘도장깨기’ 하듯 한국의 방식으로 원혼을 달랜다는 설정은 신선하면서도 불편하다.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스토리를 몇 개나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치유하는 존재가 동양의 ‘슈퍼 샤먼’이라는 설정이 이율배반적이다. 게다가 인류를 위무하는 실의 굿판엔 책무 없는 기능만 담겨 정서적 체화가 쉽지 않다. 저마다의 억울함에 갇힌 세계를 바라보는 실의 절절함도 객석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작품 말미 난데없이 끼어든 신어머니의 죽음 이후 다시 한 번 세상을 치유하러 떠나는 실의 여정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
‘만신:페이퍼 샤먼’의 문제들은 잘못 짜여진 구조와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우선 병렬식 구성은 세 시간 짜리 무대 공연엔 맞지 않는다. 구성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드라마 형식에 더 적합해 보인다. 주인공 실을 중심으로 줄기를 잡되 다양한 에피소드를 회차별로 구성한다면, ‘만신:페이퍼 샤먼’은 세계적 이슈를 반영한 흥미진진한 모험극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무대는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다쟁이의 토크박스 같다. 나열식 이야기는 반전의 묘미를 주지 않았다. 뻔한 구조의 반복으로 에피소드는 다른 이야기임에도 지루해졌고, 에피소드 열거를 위한 장면 전환이 많아 몰입도는 떨어졌다. ‘창극의 매력’은 ‘압축의 미학’에 있다는 점을 완전히 잊은 작법이었다.
게다가 제작진은 과잉 친절을 베푼다. 링컨의 노예제 폐지와 아마존에서 멸종된 새들의 연도를 콕 집어 전달한다. 각 상황과 대사, 음악으로도 충분히 전달한 이야기를 주입식 교육을 하듯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촌스럽다.
여러 대륙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만큼 그간의 창극에서 듣지 못한 토속적 리듬에 소리꾼들의 절창이 어우러지는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하지만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타악 리듬과 소리꾼들의 소리가 맞아 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귀가 불편하다. 은유와 함축, 풍자가 어우러져야 할 창극 속 대사와 노래는 뻔하고 유치한 대사로 채워졌다. 심지어 소리꾼들의 한계를 시험하듯 한없이 치솟는 고음 열전에 소리는 아름답게 뻗어나오지 못했다. 끊임없이 절규했으나, 그원통한 절규는 거대한 극장에서 희미하게 조각나버렸다. 밋밋한 이야기를 소리로 채우려는 창극단 단원들의 고군분투가 민망하게 다가왔다.
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
지난 몇 년 사이 국립창극단의 작품은 어김없이 ‘홈런’을 쳤다. 창극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도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리스 비극에 창극의 옷을 입힌 ‘트로이의 여인들’, 인기 웹툰에 소리꾼의 정서를 아로새긴 ‘정년이’, 셰익스피어 희극을 창극과 뮤지컬의 경계로 버무린 ‘베니스의 상인들’, 동서양의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 ‘리어’에 이르기까지…. 소위 ‘거를 타선’ 없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너나 없이 “창극이 전성기를 맞았다”며 “과거엔 창극을 잘 몰라 협업을 꺼려했지만 이젠 공연계 작가, 연출가들이 국립창극단과 작업을 하고 싶어 연락을 기다릴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박칼린 연출가의 첫 창극도 기대를 모았다. 그의 이력 때문이다. 박 연출가는 국악을 전공한 데다 뮤지컬계에서 배우, 음악감독, 연출가로 활동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긴 창작자다. 사실 창극 연출가가 초심자냐 베테랑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앞서 창극을 경험한 적 없는 해외 연출가들도 ‘트로이의 여인들’(옹켄센), ‘패왕별희’(우싱궈)를 올리며 새로운 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립창극단은 지난 몇 년 사이 끊임없이 장르를 확장해 진화한 창극을 만들어왔으니, 도전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어떤 시도든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나, ‘만신:페이퍼 샤먼’의 도전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국립창극단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낙제점이다.
‘만신:페이퍼 샤먼’에선 국립창극단의 성장을 이끌며 중심을 잡아준 세 요소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 탄탄하고 명민한 기획력, ▶밀도 높은 이야기와 말맛, 그 위를 유려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우리 소리, 매 작품 ‘화룡정점’이 된 ▶창극단 단원들의 출중한 기량이 보이지 않았다.
‘만신:페이퍼 샤먼’이 놓친 것은 창극과 국립창극단의 강점이다. ‘협업의 기본’은 한 작품 속 개성 강한 파트너들의 강점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것인데, 이 작품에선 창작자의 자기 주장만이 드러났다. 창작자 안에서 부유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급급하다 보니 창극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고, 창극 배우들은 험지로 내몰렸다. 그 결과 때론 비장하게, 때론 유쾌하게 세상만사 희노애락을 담아낸 창극의 미학은 사라졌다. 작품의 공동 극작, 연출, 음악감독까지 맡은 수장은 박칼린이었으나,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이 정상에서 던진 중대한 실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