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초엔저’ 현상이 일본 사상 최대 방위 예산마저 30%로 증발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새 안보 전략을 발표하고 5년간(2022~2027년) 43조엔(약 369조 7600억원)의 방위 예산을 책정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로 정해진 방위비 증액 규모를 깬 결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며 예산의 30% 가량이 증발했다. 일본은 전투기와 크루즈·요격 미사일뿐 아니라 자국에서 생산하는 군함·잠수함·전차에 들어가는 주요 장비와 부품을 미국에서 들여오는데 엔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조달 비용이 급증한 것이다. 국방비 추가 증액이 무의미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새 안보전략 발표 당시 “주변국들이 현상 유지를 무력으로 깨려는 명백한 시도를 하면서 군비 증강이 필요한 ‘전환점’에 도달했다”며 안보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2년 방위비 증액을 정할 때 환율을 달러당 108엔으로 계산해 43조엔은 3981억달러였다. 그러나 발표 시점인 같은 해 12월엔 이미 1달러에 135엔으로 환율이 올라 5년간 방위비는 3190억달러로 줄어든다.
9일 현재 엔달러 환율은 160엔으로 폭등했다. 이 환율을 적용하면 43조엔은 2673억달러가 된다. 2022년 12월과 비교하면 예산 가치가 32% 가량 감소한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F-35A 전투기의 대당 구입가격은 2018년에는 116억엔이었지만, 2024년에는 140억엔이 됐다. 또 이지스 방공 시스템을 갖춘 전함의 척당 비용도 2020년에는 2400억엔에서 2024년에는 3920억엔으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군사장비와 무기 구매 규모를 줄이는 것밖에 없다. 다케우치 마이코 일본 경제산업연구소 고문은 “엔화 약세가 북한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하는 데 미칠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은 이미 특정 항공기의 조달을 줄이고 있으며 예산을 늘릴 수 없다면 더 많은 감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34대를 구매하려고 했던 보잉사의 치누크 수송 헬리콥터 수를 17대로 줄였다. 그동안 일본은 보잉의 라이선스를 받아 가와사키중공업에서 이를 조립했는데, 대당 가격이 50억엔씩 올랐다.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단 3년 만에 이런 큰 변화가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일본의 군사력 증강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재의 재정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