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돌입…“상당히 높은 제재 설계”

김병칠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 관련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계획 및 제재 운영지침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승연 기자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의 내부통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책무구조도’가 내년 1월 2일까지 시범운영된다. 금융당국은 시범운영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시범기간 중에는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 등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다.

내부통제를 부실히 한 경영진에 대한 제재 가이드라인 초안도 마련됐다.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검사 중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제재가 가능하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처럼 장기간·대규모 피해를 유발한 경우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이는 방향으로 최종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계획이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개시…컨설팅·면책 등 ‘인센티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개정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에 따라 금융회사가 책무구조도에 기반한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조기 도입, 운영할 수 있도록 시범운영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시범운영은 법정 제출기한(내년 1월 2일)이 가장 빨리 도래하는 은행과 지주회사부터 우선 실시되며, 금융회사가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날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운영된다. 시범운영 참여를 희망하는 금융회사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10월 31일까지 책무구조도를 내면 된다.

이달 3일 시행된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금융회사 경영진에게 업무별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면 신분제재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는 순간부터 법을 적용받는데, 금융회사 입장에선 제재 등의 부담 때문에 조기 도입할 유인이 부족했다. 이날까지도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금융회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시범운영에 참여한 금융회사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시범운영기간 중 금융회사가 제출한 책무구조도에 대해 점검·자문 등 컨설팅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비조치의견서 발급을 통해 시범기간 중 내부통제 관리의무 등이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은 경우에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을 예정이다. 시범운영 과정에서 소속 임직원의 법령 위반 등을 자체 적발, 시정한 경우엔 관련 제재조치를 감경 또는 면제할 계획이다.

경영진 제재 위한 8개 트리거 기준 마련…대표이사 별도요인 제시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시 제재조치와 관련한 구체적 운영지침(안)도 마련했다. 개정 지배구조법은 위법행위 발생 경위·정도와 결과, 임직원 등의 ‘상당한 주의’ 여부 등을 고려해 제재를 감경·면제하도록 규정했는데, 이와 관련한 8개 세부 판단기준(트리거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자료]

우선 위법행위 발생 경위 및 정도에 대해서는 ▷임원 등의 지시·묵인·조장·방치 ▷장기간·반복적 발생 위법행위 등을, 위법행위 결과와 관련해서는 ▷대규모 고객 피해 발생 ▷건전경영의 중대한 저해 등을 고려할 예정이다.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등이 대부분 해당한다.

행위자 책임 판단을 위한 ‘상당한 주의’ 고려요소로는 위법행위 등 결과 발생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실효성 있는 관리조치 이행 여부 등을 따져본다. 조치 실효성 유무 판단을 위해선 ▷위험요소 파악 여부 ▷점검체계 구축 및 이행 여부 ▷내부통제 개선 ▷의사결정 절차 합리성 및 투명성 등 4가지 주요 고려요소를 감안할 계획이다.

특히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관리조치 이행 여부를 판단할 별도 고려요인이 제시됐다.

예컨대 대표이사가 객관적으로 예상 가능한 리스크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방책 마련을 추진한 사실이 문서·기록 등에 의해 확인된 경우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면 잠재적 위험요인 또는 취약분야에 대한 점검·보고체계를 마련하지 않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고 안 터져도 제재 가능…“상당히 높은 제재 가능하게 설계”

금융당국은 위법행위 고려요소에서 중대한 위법성이 인정되면 직접 책임규명 절차를 개시해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사고 등 임직원의 위법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정기검사 과정에서 내부통제 관리의무 미이행이 확인되면 제재 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김병칠 금감원 부원장보는 “내부통제는 평상시 잘 작동되어야 하는 문제”라며 “사고가 직접적인 지배구조법 작동 기준점이 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잘 작동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검사 과정에서 잘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나오면 지적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제재 감경 및 면제는 경영진의 상당한 주의 여부에 달려있으며, 최종 조치 수준은 임직원 위법행위로 인한 결과의 중대성과 상당한 주의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금융당국은 위법행위 수준(중대·보통·경미), 상당한 주의 수준(상·중·하)에 따라 제재 감면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제재 양정 매트릭스’도 제시했다. 제재 양정 기준은 8월 말까지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자료]

김 부원장보는 “제재 양정 매트릭스가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위법행위 결과가 중대하고 발생경위가 위중한, 상당한 주의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제재가 가능하도록 설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발생한 은행권의 홍콩 H지수 ELS 불완전사태와 관련해서는 “DLF나 ELS 사태처럼 광범위하고 오랜 기간 발생됐을 뿐 아니라 결과적 측면에서도 소비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는 트리거 기준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다만 임원별 책무 설정에 따라 트리거 해당 여부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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