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전새날·김희량 기자] 고물가에도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상대적으로 저렴한 명품)로 꼽히는 ‘향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가로 꼽히는 니치향수가 패션향수를 제치고 중심에 섰다. 업계도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대용량 향수 신제품을 선보이며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여름을 맞아 시원한 향수를 알리는 브랜드 팝업이 잇따르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능과 개인의 취향을 극대화한 향수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다. 성수·강남·홍대 일대의 다양한 공방과 팝업,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향수 시향 공간이 데이트 코스로 떠오를 정도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최근 3년(2021~2023년)간 국내 향수 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해 2021년 7011억원에서 지난해 9860억원으로 40.6% 증가했다. 유로모니터는 올해 향수 규모가 1조831억원으로 처음으로 1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니치향수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니치(niche)는 ‘틈새’라는 뜻으로, 흔하지 않은 향을 가진 고가의 프리미엄 향수를 의미한다. 2021년 2380억원이었던 국내 니치향수 시장 규모는 지난해 3940억원으로 65.6% 늘었다. 올해는 4471억원으로 추정된다. 2021년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한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 중인 니치 향수 브랜드 ‘딥디크’(Diptyque) 팝업스토어 모습. 김희량 기자 |
대표적인 향수 판매 채널인 면세점만 봐도 니치향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실제 니치향수의 면세점 평균 객단가는 150~200불(약 20만~27만원)이다. 일반 패션향수보다 높지만, 수요가 꾸준하게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의 향수 매출 신장률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0%, 22.3% 올랐다.
롯데면세점의 상반기 향수 매출은 전체 화장품 매출 증가율(32%)보다 8%p(포인트) 높았다. 니치향수의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53% 상승하면서 전반적인 향수 매출도 견인했다. 신세계면세점에서도 전체 향수 매출의 대부분을 니치향수가 차지했다.
고객 접점도 확대 중이다.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1터미널에 향수 전문매장 퍼퓸아틀리에를 열었다. 명동점에는 향수를 시향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신라면세점은 올해 3월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니치향수를 매장 전면에 배치했다. 펜할리곤스, 라티잔 퍼퓨머 등 인천국제공항 내 매장도 단독으로 유치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는 니치향수 노드 팝업(르라보, 딥디크, 펜할리곤스) 매장을 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니치향수에 대한 수요는 기존에도 증가했지만, 최근 들어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니치향수를 매장 전면에 내세우고, 특정 브랜드를 단독으로 유치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점 T1 퍼퓸아뜰리에. [신세계면세점 제공] |
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선보이는 ‘샤넬 썸머 클럽’. 샤넬의 향수와 입술·화장용 제품, 스킨케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호텔신라 제공] |
면세 업계는 대용량·고단가의 프리미엄 향수 제품 출시에 힘을 싣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향수 면세 한도가 100㎖로 상향되면서다. 기존 60㎖ 면세 한도는 1979년부터 44년간 이어졌다. 대용량 향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기획재정부가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관세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는 50㎖ 저용량의 EDT(오드뚜왈렛), EDP(오드퍼퓸) 등 클래식한 베스트 상품이 강세였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라인, 또는 강렬한 향의 고용량·고밸류의 향수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바디 케어, 홈 프레그넌스 등으로 카테고리도 확장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탬버린즈 고체 향수 ‘퍼퓸 밤’. [탬버린즈 제공] |
논픽션 시트러스 컬렉션 ‘플 가든 오 드 퍼퓸’. [논픽션 제공] |
다만 국내 향수 브랜드는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다. 향수가 익숙한 문화로 자리 잡은 서양권과 비교하면 규모의 차이는 더 크다. 향료 연구 및 개발 전문가에 대한 투자도 쉽지 않다.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글로벌 고객에게 인지도가 높은 탬버린즈, 논픽션 등의 매출이 큰 편이다.
한 향수 제조사 관계자는 “국내에는 오리지널 원료가 되는 향을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해외에 로열티를 지급하거나 새로운 향을 개발해야 한다”며 “아직 국내 시장은 해외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아 높은 비용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새로운 향수 브랜드가 나와도 소비자 인식이 높지 않다”며 “해외 명품 향수 브랜드처럼 대표적인 향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국내 향수 브랜드에 대한 연구·개발이 계속 이뤄져야 성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향수는 체취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양에서 역사가 더 길다”며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글로벌 향수 브랜드가 국내보다 더 고도화되어 있다는 인식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차별성 있는 제품력과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서 경쟁력을 보인 것처럼, 독특한 한국적인 향과 디자인을 연구한다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