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도계 파워 ‘실리콘밸리’ 넘어 ‘백악관’까지 [헬로인디아]

23일(현지시간) 인도 남부 타밀라두 주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초상이 그려진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의원의 아내 우샤 밴스, 공화당 대선 후보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경쟁을 벌였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등 미국 대선에서 인도계 엘리트들이 급부상했다.

첨단 컴퓨터 테크놀로지 분야는 일찍부터 인도계가 휩쓸면서 ‘실리콘밸리는 인도계가 장악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인도계가 미국 내 아시아계 중 인구가 가장 많고 정치적으로도 가장 활동적인 그룹”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영어 구사 능력과 높은 교육 수준, 백인 주류 사회와의 네트워킹 노력 등을 인도계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인도계 미국인은 약 440만명으로 집계된다. 미국 전체 인구 3억4000만명의 1%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인도계는 439만7737명으로 10년 전보다 54.7% 늘어 처음으로 중국계(412만8718명)를 넘어 아시아계 1위에 올랐다.

단순히 인구수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지난 2011년 미국 기술업계 내 인도 출신 경영진의 활약상을 전하며 “인도의 주요 수출품은 최고경영자(CEO)”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를 접수한 인도계는 13년이 지난 현재 워싱턴 정계까지 뒤흔드는 모습이다.

미국의 최초 여성 부통령인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UC버클리에서 암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7세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에 컸다. 그는 흑인 배경 때문에 ‘여자 오바마’로 불리지만, 정체성 형성에는 인도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리스는 회고록에서 “인도인과 흑인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가르쳐준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인도 문화에 대한 강한 인식과 감사를 갖고 갖고 자랐다”고 썼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인도 고위 관료 출신으로 최상류층인 브라만 계급으로 알려진다. 어린 시절 인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외할아버지와 만났다는 해리스는 “책임감과 정직, 고결함이라는 측면에서 내게 강한 영향을 줬다”고 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JD밴스 상원의원과 그의 아내 우샤 밴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EPA]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의 부인 우샤 밴스도 인도 이민자의 딸이다. 밴스 의원의 든든한 조력자로 알려진 우샤는 남편이 부통령이 되면 세컨드 레이디로 활동하게 된다.

우샤는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밴스 의원과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만났다. 우샤는 졸업 후 대형 로펌 ‘멍거톨슨앤올슨’ 소속 변호사로 활동했다.

밴스 의원이 17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수락 연설에 나서기 전 무대에 오른 우샤는 “오하이오 미들타운의 소년보다 아메리칸드림을 보여주는 더 강력한 예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남편을 소개했다. 이어 “그의 새 역할에서의 목표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기회를 창출하며 더 좋은 삶을 구축하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그가 우리 가족을 위해 추구했던 것과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대니 윌리스 델라웨어 청년 공화당 의장은 “이번 부통령 지명을 통해 미국의 부통령과 그의 부인이 다양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트럼프 대항마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도전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 경선 초기에 중도 하차한 기업가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도 인도계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공화당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자라 38세에 최연소 주지사까지 올랐다. 그는 인도 펀자브 출신의 시크교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본명은 니마라타 니키 란드하와라다. 1996년 결혼 후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남편과 함께 시크교 연례행사에 참석하는 등 인도계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라마스와미는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제약회사 ‘로이반트 사이언스’를 창업해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경선에서 하차한 후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내각의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밖에도 망카 딩그라와 민주당 상원의원, 반다나 슬레이터 민주당 하원의원, 샤스티 콘래드 워싱턴주 민주당 의장 등이 인도계 정치 지도자들이다.

인도계는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계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인도계 미국인들의 중위가구 소득은 백인 가구의 거의 두 배, 흑인 가구의 세 배에 달하며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애틀타임스에 따르면 인도계 미국인들은 워싱턴주에서 가장 높은 가구 소득인 19만4000달러(약 2억6800만원)을 벌고 있다. 이들의 높은 소득 수준은 미국에서 기술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에 있는 인도인의 약 60%는 2000년 이후에 도착했다.

인도계 미국인의 3분의 2는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40%는 대학원 학위까지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의사 20명 중 1명은 인도인이며,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 10명 중 1명도 인도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전체 인구의 1.5% 미만에 달하는 인도계 미국인들이 미국 의회의 1%를 대표한다”고 평가했다.

카틱 라마크리슈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 이민자들은 고학력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며 “언어 능력이 공직 진출의 장벽을 낮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크리슈난 교수는 “인도 이민자들은 권위주의 국가 출신 이민자들과 달리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도 미국 정치권 진출을 촉진한 이유”라며 인도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치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크게 늘어난 인도 출신 유권자 수도 인도계의 정치 세력의 든든한 받침이 되고 있다. AAPI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투표권을 가진 인도계는 210만명에 달하며, 71%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 중 가장 높으며 미국내 인종 그룹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비히스패닉계 백인의 투표율 71%와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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