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요제프 셰파흐 지음 장혜경 옮김/ 에코리브르 |
아무리 쓸고 닦아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뽀얗게 쌓이는 게 먼지다. 청소할 때마다 ‘도대체 이 많은 먼지는 어디에서 끝없이 오는 건가’ 싶은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찰 정도다. 그런데 먼지와 사투를 벌이는 대신 이 작은 입자의 무한한 실체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정답을 찾아 나가다 보면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어떤 이는 먼지로 돈을 벌고, 또 다른 이는 먼지를 통해 범죄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심지어 먼지는 수천 년 전 인류가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읽어내거나 미스터리한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먼지는 어디에나 있어서다.
신간 ‘먼지’는 인류 역사를 뒤바꾼 먼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룬다. 빅뱅 이후 세계는 먼지의 결합으로 만들어졌고, 우리 몸의 화학 원소가 우주 먼지로 구워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 알갱이에 천착하는 사람들의 생소한 이야기까지 쫓는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먼지를 사고파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한 다국적 기술 서비스기업인 DMT는 90종의 먼지를 수집해 연간 총 8t을 판매한다. 판매가가 1㎏에 약 160유로(24만원)나 하는 먼지도 있다. 대부분의 고객은 1~2㎏를 주문한다. 1000㎏ 이상 주문하는 극소수의 고객도 있다. 이 먼지는 청소기, 휴대전화, 자동차 와이퍼, 현금 지급기 등 성능을 테스트할 때 쓰인다. 예를 들면 중국은 먼지 저항력을 갖춘 자동차 와이퍼 개발을 위해 재현 가능한 중국 먼지를 구매한다. 유럽보다 중국에서 작동되는 자동차의 와이퍼가 더 잘 망가지는 편이라서다. 미국 연방인쇄국(BEP)은 지폐 파쇄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 미국 내 은행권 먼지를 산다. 낡은 지폐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기계가 자주 고장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DMT 사무실에는 전 세계에서 보낸 청소기 먼지 봉투를 담는 자루가 놓여 있다. 대도시와 시골, 농가와 병원, 숙박 시설과 양로원의 봉투부터 흡연자와 비흡연자 가정, 싱글과 대가족의 집,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의 봉투까지 총망라한다.
저자는 “먼지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그만큼 방대하다는 의미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생물학자 크리스티아나 륑고르는 동물원에서 수집한 먼지로 곰이 먹는 연어가 어떤 종(種)인지까지 알아냈다. 먼지 중에 떠다니는 DNA를 빨아들여 그 샘플에서 얻은 정보로 특정 포유류, 조류, 양서류, 갑각류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DNA 농도는 거리가 멀어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몇 백m 떨어진 곳에서 먼지를 수집해도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9·11 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수집한 먼지가 가리키는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먼지로 알게 된 사실은 뜻밖에도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한 사람이 평균적인 미국인에 비해 훨씬 많은 아편을 흡입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