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이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공화당이 혼란에 빠졌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령 리스크’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됐고,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은 ‘막말’로 도마에 올랐다. 공화당 지도부는 역풍을 우려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공격을 제지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 더힐 등 외신은 28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에 트럼프 캠프가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경쟁 상대가 고령 백인 남성에서 50대 흑인 여성으로 바뀐 데 따라 선거 전략을 대폭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고령 논란’에 휩싸인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1일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이후 해리스 부통령이 전광석화로 민주당 대선 후보 지위를 굳히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즐겨 쓰던 무기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고령 공세를 펼쳐 왔으나 이제는 자신보다 무려 20살 가량 젊은 50대 후보와 맞서야 할 처지가 됐다.
해리스 부통령 측은 이미 이 점을 공세 포인트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신과 트럼프 후보를 미래와 퇴보로 규정하는가 하면, 성명을 통해 트럼프 후보를 ‘78세의 범죄자’로 묘사하며 “늙고 꽤 괴이한 건 아닌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에 공화당에서는 통일되지 않은 메시지가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붙였던 “덜떨어진”, “불쾌한” 같은 표현을 마구잡이로 해리스 부통령에게 반복하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사례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캠프 측은 인종, 성별을 본격적인 공세 소재로 꺼내들 소지가 다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밴스 의원은 과거 해리스 부통령을 ‘캣레이디(자식 없이 고양이와 사는 여성)’라고 부른 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재조명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흑인 지지자들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이 흑인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얻는 데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흑인 지지층들은 미국 대선에서 인구통계학적으로 중요한 집단이다.
로이터통신이 인터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원 9명과 흑인 여성 공화당원 11명은 “해리스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여전히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지만 해리스 후보에 대한 공격의 어조가 유권자들의 공화당 지지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면서 미 대선전에서는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는 DEI가 이번 대선에서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을 ‘DEI 부통령’이나 ‘DEI 고용인’으로 지칭한 발언은 해리스가 여성·흑인·인도계라는 배경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후보직을 물려받았다는 인식을 반영해 논란이 됐다.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질 경우 그간 공화당이 적극 공략해 온 흑인 유권자는 물론 핵심 유권자인 여성 표심을 모두 잃게 되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발표 이후 36시간 동안 1억달러를 모금하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사실상 대선 후보로서 선거운동에 나선 일주일 동안 해리스 캠프에는 2억달러(약 2771억원)의 기부금이 몰려 들었으며 새로 후원에 동참한 사람만 17만명(66%)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