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앞 현수막.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지방의회가 난립하는 정당 현수막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으나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정당의 홍보활동으로서 현수막은 보호돼야 하고, 조례에 우선하는 관련 법이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김상환)는 최근 행정안전부가 인천광역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행정안전부가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동일한 내용의 소송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현수막 공해’ 논란은 2022년 12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 개정(1차 개정)으로 시작됐다. 정당 현수막에 설치 개수, 장소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한 내용의 조항이 신설됐다. 정당이 정책, 정치적 현안에 대해 현수막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 규정 적용이 배제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에 따라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면서 발생했다. 부적절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는 현수막이 정당의 현수막이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게시되고, 이로 인해 통행 불편과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23년 5월 인천시의회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현수막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통과됐다.
인천광역시의회의 조례안은 정당 현수막 설치·표시할 때 ▷지정게시대 게시 ▷동시 게시 현수막 개수 제한(선거구별 4개 이하) ▷혐오·비방 내용 금지 등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행안부는 정당 현수막의 표시·설치 관련 내용은 옥외광고물법이 직접 규정하는 사항으로, 조례로 위임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행안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정당 현수막에 관한 규율은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의 위임 없이 조례로 규율할 수 있는 사항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조례로 옥외광고물법의 정당 현수막 표시·설치에 관해 정한 것보다 엄격하게 규정한 조례안은 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정당 현수막이 정당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에 제한을 하더라도 조례가 아닌 법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정당이 정책, 정치적 현안에 대해 입장을 현수막으로 홍보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정당활동”이라며 “정치적 기본권과 밀접한 현수막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국회)가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2024년 1월 옥외광고물법이 다시 개정돼 관련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개정법은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 규정 적용 제외는 유지하되 ▷읍·면·동 별로 2개 이내 설치 ▷장소, 규격, 기간 등 대통령령 위임 ▷지자체에 기간 만료 현수막 철거 권한 부여 등을 담고 있다. 또 대통령령은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정당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는 등 규격, 기간 및 표시·설치 방법을 상세히 규정했다.
대법원은 “2차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정당 현수막에 대해 전국에 동일한 내용의 보장·제한을 실시하자는 취지”라며 “정당 현수막에 대해 지자체의 실정에 맞게 별도로 규율하려는 취지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