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은 됐고, 중박만이라도…” ‘블록버스터’ 사라진 여름 극장가

영화 ‘리볼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영화 본다’고 하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컴퓨터나 TV 모니터로 보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름 극장가 풍경도 변했다. 한 해 관객 3분의 1이 극장을 찾는다는 여름 성수기에도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대작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일명 ‘빅5’로 불리는 투자배급사들이 공개하는 여름 영화 라인업 중 ‘행복의 나라’를 빼고는 손익분기점(BEP)이 200만명을 넘는 작품이 없다. 오는 31일 ‘파일럿’의 개봉을 시작으로 ‘리볼버’, ‘빅토리’, ‘필사의 추격’, ‘늘봄가든’, ‘한국이 싫어서’ 등이 올 여름 뜨거운 극장가의 개봉 행렬에 합류할 예정이지만, 대작이라고 볼 만한 영화는 없다. 흥행 공식을 쓰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예년에 비해 중형급 영화와 서브 컬처 영화 등이 늘어난 이유다.

화려한 캐스팅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소위 ‘텐트폴 영화’가 극장가에서 사라진 것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급감하면서 영화사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4.4회에 이르던 1인당 연평균 영화관 관람 횟수는 지난해 2.4회로 반토막이 났다. 이와 함께 OTT처럼 타깃 관객 층이 두텁게 있는 특색 있는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면서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도 풀이된다.

영화 ‘파일럿’.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만 해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그것도 스타 파일럿이었던 ‘한정우’와 여장 파일럿인 ‘한정미’로 변신해 1인 2역에 도전하는 조정석의 원맨쇼가 주요 내용이다. 제작비를 100억원 미만으로 아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핏빛 복수극으로 돌아온 전도연 주연의 ‘리볼버’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은 여성 누아르 액션물인데, 손익분기점이 140만명에 불과하다. 영화계에서 말하는 소위 ‘중박(손익분기점 200만~500만명)’만 해도 수익이 확실하게 보증된 영화인 셈이다. 그만큼 제작비를 다이어트 해 위험 부담을 확 줄였다.

영화 ‘탈주’(85억원), ‘핸섬가이즈’(49억원), ‘빅토리’(83억원)도 마찬가지다. 제작비 180억~280억원대였던 지난해 여름 대작 4편, 250억~350억원대였던 2022년 여름 대작 4편에 비하면 투자 규모가 완전히 축소됐다.

영화 ‘탈주’.
영화 ‘핸섬가이즈’

이런 분위기에서 무려 200억원을 들여 제작한 고(故) 이선균 주연의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흥행 부진은 뼈아픈 대목이다. CJ ENM이 배급한 대작인 이 영화는 29일 기준 누적 관람객이 67만명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CJ ENM의 영화 사업 철수설까지 나돌 정도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 한 편도 100만 관객을 넘기지 못한 CJ ENM가 올해도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CJ ENM은 이를 부인하는 중이다.

달라진 여름 극장가 모습은 지난해 여름 대작들의 흥행 실패가 영향을 미쳤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 대작 중에 김혜수와 염정아를 ‘여성 투톱’으로 내세운 ‘밀수’만이 홀로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박 수준은 아니다. 손익분기점인 400만명 보다 소폭 많은 514만명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고,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무려 100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으면서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출혈 경쟁이 큰 고(高) 예산 영화 투자가 신중해졌다”며 “그보다 저예산 영화라도 입소문을 내 소위 ‘검증된 영화’로 관객몰이를 하는 마케팅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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