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월드디제이페스티벌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 ‘싱크넥스트24’부터 팝스타 크리스토퍼 내한공연, 국내 최대 EDM(Electronic Dance Music) 페스티벌인 ‘월드디제이페스티벌’….
일명 ‘티메프’(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파장이 공연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관객들은 예약한 공연을 관람하지 못할까 싶어 속을 끓이고, 공연 제작사은 티켓 대금을 정산받지 못해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31일 공연계에 따르면 연극, 뮤지컬, 콘서트 제작사들이 티몬, 위메프를 통해 판매된 공연 티켓에 대한 정산을 받지 못해 갖은 손해가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티켓을 예매한 소비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티몬, 위메프를 통해 티켓을 판매한 크고 작은 제작사들이 아직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에서 줄줄이 이어질 피해도 우려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티몬과 위메프에선 공공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24’의 공연들부터 각종 워터밤 전국 공연은 물론 연극, 뮤지컬까지 다양한 공연 티켓을 팔아왔다.
‘티메프’(티몬,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공연계로도 확산, 중소 업체에선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위메프 캡처] |
사실 공연 티켓은 티몬과 위메프에서만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명실상부 국내 1위 티켓 판매 사이트인 인터파크를 필두로 네이버, 예스24, 멜론 등이 포진해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공연 티켓 판매 후발주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티메프 사태가 공연계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후발주자인 티몬과 위메프가 최근 공연기획사에 파격적인 수수료 인하를 제시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티켓 판매를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업체 모두 사업을 ‘소셜 커머스’(일정 수 이상 구매자가 모이면 특정 품목을 일정 기간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방식)로 시작한 만큼 고객들의 자발적 입소문을 활용,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해 고객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국내 대표적인 음악 축제를 진행 중인 한 기획사 관계자는 “수만 장 이상의 공연 티켓을 팔아치워야 하는 페스티벌의 경우 전자상거래 업체를 통해 내년 페스티벌까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공연 뿐만이 아니라 2025년 공연까지 ‘티메프’ 사태에 물려있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 역시 지난 16일부터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의 슈퍼 얼리버드 티켓을 한정수량 판매했다. 내년 6월 14~15일 이틀간 열리는 페스티벌의 입장권이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은 국내 최대 EDM 페스티벌로 총 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인기 행사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을 주최하는 비이피씨탄젠트는 “환불 부분은 티몬과 위메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티몬과 위메프를 통해 내년 ‘월디페’ 티켓을 구매하신 분들에게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콘텐츠플래닝 제공] |
대다수 공연 제작사와 기획사는 관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예매 티켓에 대해서는 ‘공연 관람’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대학로 대표 장수 공연인 연극 ‘쉬어매드니스’를 비롯해 뮤지컬 ‘미오 프라텔로’, ‘뱀프X헌터’ 관객들은 덕분에 ‘티메프 사태’를 피했다. 공연제작사 콘텐츠플래닝도 티몬과 위메프를 통해 판매한 티켓 구매 관객은 정산 문제와 상관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현재 두 업체에서의 티켓 판매는 중단한 상태다.
노재환 콘텐츠플래닝 대표는 “관객이 없으면 공연은 그저 리허설”이라며 “소중한 관객들과의 신뢰가 가장 최우선이라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손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관객에게 혼란을 전가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라고도 했다.
아이스쇼인 ‘피터팬 온 아이스’ 내한공연을 여는 공연기획사 월드쇼마켓 측도 티몬과 위메프를 통해 티켓을 판매했지만, 정산 여부과 무관하게 관객들은 모두 공연 관람을 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일부 티켓을 티몬과 위메프를 통해 팔았다. 두 곳을 통해 팔린 세종문화회관 주최 공연은 10장 이내라는 설명이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위메프와 티몬 등에서 예매된 티켓의 환불이 이뤄지고 있다”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관람권을 보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티메프 사태’의 체감은 대형 제작사와 공공기관, 중소 기획사 등 업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중소 기획사들의 경우 티켓 가격 미정산 여파가 그대로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티켓 판매에 대한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소비자 피해보상보험을 가입한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상당수 공연 제작사와 기획사가 관객들의 공연 관람을 보장한 상황에서 손해는 업체 측이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일부에서는 중소 기획사의 ‘줄도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상당수 제작사가 티켓 판매 대금으로 공연과 페스티벌 출연자의 개런티와 조명, 음향 업체 등 참여 스태프 인건비를 정산해주는 시스템이라 자금줄이 막히면 대출을 받거나 혹은 공연 자체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티켓을 판매한 한 업체는 “협찬을 많이 받지 않는 일회성 공연과 페스티벌은 티켓 판매를 통한 수익이 유일한 매출 확보 통로”라며 “그것이 막혀 버리면 빚을 내서라도 사태를 수습해야 해 중소 업체들은 도산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 기획사나 공공기관 등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보통 이들 업체들은 피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이번 사태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손해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대규모 공연의 경우 티켓 판매 뿐 아니라 대기업 협찬사 유치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티메프 사태로 관객이 모이지 않으면, 협찬사 이탈로 이어져 티켓 판매 수익 이상의 손해가 날 수 있어서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페스티벌의 경우 티켓 수익은 물론 협찬 유치로 매출을 올리는 만큼 협찬사 이탈을 막기 위해 관객 확보가 최우선”이라며 “정산 문제로 인한 손해를 감당해 협찬사의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최선의 결정일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