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첫 총파업에 나섰을 당시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 앞에서 열린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화성=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장기간 파업을 이어 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와 삼성전자 사측이 지난 29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끝장 교섭’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 노사 양측 간에는 당분간 냉랭한 기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반도체 산업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 사측과 전삼노는 경기도 기흥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된 3일간의 협상에서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3일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절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전삼노가 사측에 제시한 조건은 ▷평균 임금인상률 5.6%(기본 인상률 3.5%+성과 인상률 2.1%) ▷노조 창립휴가 1일 보장 ▷성과급 제도 개선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이었다.
사측은 “노측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우려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측이 내세운 조건은 ▷ 노조 총회 8시간 유급 노조활동 인정 ▷ 전 직원 여가포인트 50만 지급 ▷ 향후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 시 노조 의견 수렴 ▷ 2024년 연차 의무사용일수 15일에서 10일로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대표 교섭노조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전삼노의 교섭권은 내달 4일까지다. 전삼노가 주도해 온 무기한 총파업도 내달 4일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다른 노조가 교섭권을 요구할 경우에는 개별 교섭이 진행되거나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만 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 전삼노도 지난 23일 유튜브를 통해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8월 5일 변경사항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 기간 안에 (교섭을) 끝내려고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삼성전자엔 현재 사무직노조(1노조), 구미네트워크노조(2노조), 삼성전자노조 동행(동행노조·3노조), 전삼노(4노조), DX(디바이스경험)노조(5노조)가 있다. 이들은 단일 교섭창구를 구성해 협상에 임해왔지만, 장기간 파업으로 현재는 견해차가 생긴 상황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1차 총파업 돌입 당시 모습.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 앞에서 열린 총파업 궐기대회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화성=이상섭 기자 |
제3노조인 동행노조는 지난 26일 “기대했던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면서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강성 노조의 힘은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실망만 안겨줄 것”이라며 전삼노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동행노조가 향후 총파업에 반대 입장을 낼 경우 전삼노 주도의 현재 총파업 구도는 자연스레 막을 내리게 된다. 전삼노는 지난 8일 1차 총파업을 시작했고 11일부터는 무기한 총파업을 진행해 왔다. 이 경우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한 뒤 25일만에 멈추게 된다.
다만 노사 간 불편한 관계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삼노는 1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무노조 경영 폐기 약속 이행과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파업 계획을 밝힐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더욱 강도 높은 행동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주요 선진국들이 ‘전쟁’으로 표현될 만큼 치열한 경쟁 구도를 띠고 있는 시점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대만 TSMC와 격차를 줄여야 하고, HBM은 SK하이닉스와의 간극을 좁히는 데 주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전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최대 수출 품목으로, 반도체가 올해 우리나라 수출을 이끄는 품목이다. 실제 6월 반도체 수출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노측이 파업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측이 성과급에 대한 불만으로 총파업에 들어갔지만, 2분기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서 삼성전자 SD 부문 직원들이 받게 될 영업이익은 연봉의 40%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올해 초 사측의 경영 계획 상 OPI 기준에 따르면, DS부문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11조원일 경우 OPI는 연봉의 0~3%, 29조원이면 50%가 지급된다. 연초만해도 반도체 업황의 호전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DS부분 직원들은 0~3% 지급안에 대해 반발한 바 있다. 전삼노 조합원은 7월 기준 3만657명으로,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파업 장기화에 따른 임금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습이다. 지난 8일부터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무임금 무노동’ 원칙에 따라 적어도 대리급은 400만원, 과장급은 500만원의 임금 손실을 본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관계자는 “남은 기간 추가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이번 교섭 결렬로 노조원에게 임금 손실 피해만 남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전삼노는 무리한 협상기조를 이어왔다. 끝장 교섭이 시작된 29일에는 “사측이 파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견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를 통해 “일부 고과권자들이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한편 사측은 앞서 진행한 2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서 “파업이 조기 종결될 수 있도록 노조와 지속적으로 소통과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파업에도 고객 물량 대응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노조 파업이 지속되더라도 경영과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적법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