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옭아맨 ‘정산지연 사태’…큐익스프레스 위기로 번지나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 내부 모습 [연합]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큐텐그룹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가 ‘올스톱’ 상태인 가운데 큐익스프레스 등 해외 계열사들에도 유동성 위기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큐텐그룹의 한국 계열사들은 사실상 ‘전멸’ 상태다. 티메프는 회생의 기로에 서 있고, 인터파크 커머스와 AK몰도 최근 판매대금 정산 지연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인터파크도서와 인팍쇼핑 등은 서비스 자체를 중단했다.

해외 계열사에서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큐텐그룹은 동남아시아 기반의 이커머스 큐텐을 비롯해 싱가포르 소재 물류업체 큐익스프레스, 미국 소재 이커머스 위시(Wish) 등 해외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달 31일 국내 물류센터에 대한 업무를 일부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티메프 사태로 국내 물동량이 줄어든 여파로 추측된다. 큐익스프레스는 티메프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한국보다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큐익스프레스 거래량의 90%가량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다. 큐익스프레스는 다른 계열사들과 달리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특히 큐텐그룹이 공격적으로 키운 이커머스 계열사의 물량을 토대로 매출을 키웠다. 2022년 기준 큐익스프레스의 매출액은 4억9662만 싱가포르달러(약 5100억원)로 2020년(1억6784만 싱가포르달러)에서 2년 만에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최근 큐익스프레스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을 몰아내고,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큐익스프레스는 살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큐익스프레스를 비롯해 해외 계열사에 유동성 위기가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큐익스프레스는 성장세와 달리 재무 상황이 열악하다. 지난 2022년 말 기준 자본금 930억원, 누적결손금 1294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은 1억1878만 싱가포르달러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유동부채·2억3212만 싱가포르달러)의 절반 규모다.

업계는 글로벌 큐텐에 주목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큐익스프레스 거래의 상당수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큐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글로벌 큐텐까지 영향을 미치면 큐익스프레스의 경영환경이 본격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

큐텐은 현재 싱가포르를 비롯해 현지에서 이커머스 사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곳곳에서 조성되고 있다. 실제 작년부터 큐텐에서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판매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현지 매체에서도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큐텐에서 돈을 받지 못한 국내 판매자들은 별도의 단체카톡방을 만들고, 단체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큐텐의 재무상황도 넉넉지 않다. 2021년 말 기준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3.5배 많았다. 누적 결손금도 4316억원에 달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싱가포르 당국에서도 큐텐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트타임즈(The Straits Times)’도 한국의 티메프 사태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 싱가포르 소재 투자자문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는 한국 내 물동량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위메프 사태로 당장 막대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글로벌 큐텐 입점사 중에 한국 판매자 비중이 높아 큐텐의 거래량이 감소하면 큐익스프레스뿐만 아니라 큐텐그룹 전반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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