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이용훈 [예술의전당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백인들, 특히 유러피안들의 주요 무대에서 동양인으로서 선배들은 더 심했겠지만 아마도 오텔로와 같은 마음을 느꼈을 거예요.”
2007년 칠레 산티아고 시립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의 주역을 맡은 이후 국제무대에 데뷔한 테너 이용훈(51).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 테너로 자리매김했지만, 그가 국제 무대에서 명성을 얻기까진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오페라 ‘투란도트’에 이어 ‘오텔로’(18~25일·예술의전당)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이용훈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동양인 성악가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 데뷔할 당시 주역(퍼스트 캐스트)으로 캐스팅됐는데, 이탈리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2주간 리허설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며 “호텔에서 혼자 연습을 하며 오텔로의 감정을 가깝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 ‘오텔로’는 인종차별이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의 뛰어난 무예와 두뇌로 총독의 자리까지 오른 무어인(아랍계 이슬람교도) 장군이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그의 부하 이아고가 손수건 한 장으로 오텔로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 사이에 오해와 의심을 불러일으켜 이들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한국에서 만나는 ‘오텔로’는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키스 위너가 2017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린 프로덕션 버전이다. 이용훈을 비롯해 테오도르 일린카이(오텔로 역), 소프라노 흐라추이 바센츠·홍주영(데스데모나 역),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니콜로즈 라그빌라바(이아고 역)가 출연한다.
오페라 ‘오텔로’의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 테너 이용훈, 지휘자 카를로 리치, 테너 테오도르 일린카이, 바리톤 니콜라즈 라그빌라바, 소프라노 홍주영 [예술의전당 제공] |
이용훈은 “꼭 나와 같은 경우는 아니었겠지만 오텔로의 강하면서도 연약한 부분,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아내를 향한 사랑, 아기자기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라며 “이탈리어를 몰라도 사람의 감정과 소리를 통해 질투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도록 이 작품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이용훈에게 2년 전 한국 무대를 제안,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이번 무대를 성사시켰다. 당시 이용훈은 한국 데뷔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은 작품으로 ‘오텔로’를 꼽았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오페라 ‘투란도트’가 그의 한국 데뷔작이 됐기에 이번 작품은 이용훈의 두 번째 한국 무대다.
그는 “’오텔로‘는 모든 테너들의 꿈이자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것처럼 테너들에겐 어렵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며 “오텔로가 가진 아픔, 고뇌와 갈등, 질투와 사랑, 이 모든 것들을 텍스트 뿐 아니라 소리의 색깔, 감정과 섞어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용훈과 함께 오텔로 역을 맡은 테오도르 일린카이도 “이 역할은 모든 스핀토 테너(서정적 음색과 힘 있는 소리를 겸비한 테너)의 꿈”이라고 했다.
지휘는 ‘오페라 거장’ 카를로 리치가 맡는다. 그는 “‘오텔로’라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베르디다. 베르디는 극장의 남자”라며 “그는 모든 음악에 있어 악보의 한 음 한 음을 아름다운 음악이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드라마에 딱 맞기에 그 음표를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막에서 페라리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폭풍같은 음악과 함께 드라마에 진입한다”며 “‘오텔로’의 첫 20분은 이전의 어떤 오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나온다”며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