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자사 친환경 마스코트 ‘리토’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20년 전에는 포장 없는 배쓰 밤(입욕제), 샴푸 바(고체 샴푸)도 낯선 수입품이었죠. 비누인지 화장품인지 정체를 모르겠다며, 새벽 3, 4시까지 세관에서 조사받은 적도 있습니다.”
제품 10개 중 7개가 포장이 없는 ‘벌거벗은(naked) 화장품’이다. 입구부터 입욕제 거품과 손글씨가 가득한 매장.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 재료를 사용해 모든 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브랜드. 고집스러운 이 영국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이를 헤럴드경제가 지난 7월 마지막날 만났다.
주인공은 바로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다. 스물아홉 살에 대기업을 제치고 한국 사업권을 따낸 그는 2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다섯 명의 직원으로 명동에 1호 매장을 열었다. 회사는 이제 500명이 넘는 직원과 연매출 1000억원대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계 52개국 중 5위 수준의 매출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최상위다.
러쉬코리아는 다양한 구성원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큰 가치로 여긴다. 결혼하지 않는 직원에게도 비혼 휴가와 축의금을 준다. 반려동물 수당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 비혼 선언제도를 사용한 직원은 지난 6월 기준 25명에 이른다. 올해 5월부터는 필라테스 등 운동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동료 직원이 주 1회 복싱과 필라테스 수업을 하는 ‘해피 헬스아워 제도’를 운영 중이다.
철새의 쉴 곳을 해치지 않으며 전통 방식으로 염전을 운영하는 크로아티아 업체의 소금, 브라질 토착민 공동체의 원재료를 사용하는 러쉬 제품에는 사연이 가득하다. 2021년 11월부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악영향을 우려해 러쉬는 인스타그램, 스냅챗 활용 마케팅을 중단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블로그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여기에 새터민·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캠페인, 이태원 참사 후 피아노 음악회 등 러쉬코리아는 ‘한국’이라는 향을 입혀 독창적인 길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전사적 기조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지난 4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업무 협약을 체결, 국산 콩을 활용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9월 문을 여는 제주점을 통해 지역공동체 협업 제품도 늘린다. 또 발달장애예술가와 함께하는 아트프로젝트 무대는 해외로 넓힌다. 제1·2회 러쉬 아트페어에 참여한 이들의 작품으로 만든 에코백을 오는 9월 8일까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우미령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러쉬코리아가 초심을 상기하기 위해 올해 오픈한 성수점 매장 |
-러쉬 파티(매장 고객체험 프로그램), 5000명이 다녀간 성수동 러브라운지 팝업 등 올해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요즘 K-뷰티가 열풍이다. 빠르게 트렌드와 제품을 만드는 한국 브랜드와 다르게 글로벌 브랜드는 본사의 승인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러쉬를 비롯한 글로벌 브랜드들은 제품 출시나 성분 변경의 글로벌 승인이 까다로운 편이다. 높은 소비자의 기대치 속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 선택을 받으려면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저희는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실천하고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다음달에는 해양환경 보존을 주제로 46명의 발달장애예술가와 제3회 아트페어를 연다. 뛰어난 재능에도 기회가 없었던 신진 작가들과 내년 4월까지 전시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객경험을 확대하고자 지난달에는 러쉬코리아가 처음으로 온·오프라인 통합 멤버십 ‘러쉬 어스’를 선보였다. 공병 5개를 1개의 프레쉬 페이스 마스크로 교환하는 ‘브링잇백 캠페인’ 등 참여를 독려하며 러쉬의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하려 한다.
-동물·환경과 공존 등 러쉬코리아에 사회적 책임이 왜 중요한가.
▶기업의 수익 창출, 물론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그 수익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얻어진 수익인가’라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 러쉬코리아가 ‘동물과 자연, 환경과의 공존’이라는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이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직원을 ‘해피피플’로 부르는 건 러쉬코리아의 차별점이다.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는.
▶직원을 위한 피플케어실이 있고, 발달장애 아티스트와 예술 캠페인으로 브랜드 가치를 풀어내는 건 한국(러쉬코리아)이 유일하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행복한 사회와 지구를 만든다고 믿는다. ‘너만 행복하고 말 거야?’처럼 러쉬는 좋은 세상이 뭔지를 묻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브랜드다. 동료에 대한 존경,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선한 영향력이 더 퍼질 수 있다.
-20년 넘게 러쉬코리아를 이끌었다. 어려운 점은.
▶국내 키친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쉬는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들어 생산 공장을 ‘키친’이라고 부른다. 세계 50여 개국 사업국 중 영국, 독일, 크로아티아, 호주, 일본, 캐나다 총 6개국이 키친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프레쉬 페이스 마스크 등 일부 제품을 생산 중인데 더 많은 제품을 한국에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비전은.
▶비건 화장품시장은 지난해 5700억원 규모로 10년 동안 4배 규모로 커졌다. 내년엔 1조원 전망이 나온다. ‘윤리적 화장품 1등’ 같이 선한 영향력을 주는 분야에서 최정상을 지키고 싶다.
‘순수한 욕심’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매일, 조금씩, 될 때까지”란 말을 자주 되새긴다. 안주하지 않고, 진정성과 일관성이라는 힘을 지키는 것이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해피피플을 위한 노력을 정리한 콘텐츠를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