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과 고용 지표의 동반 부진으로 2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선 나스닥지수가 3% 넘게 급락하는 등 폭락이 두드러져 경기 침체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심각하게 시장 움직임을 살피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더들 [AP] |
고용 쇼크에 인공지능(AI) 주가 거품론까지 불거지며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자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이 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토르스텐 슬로크 아폴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에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며 “투자자들은 이번 실업률을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 들어선 것으로 볼 지 가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JP모건의 미국 채권조사 담당 상무이사인 스리니 라마스와미도 “투자자들이 금리와 유동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변동성 증가 대비로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미 증시의 대표적 변동성 지수이자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빅스(VIX)’ 지수는 2일(현지시간) 장중 한 때 29.66까지 올랐다가, 전일 대비 25.82% 오른 23.39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2023년 3월 이후 최고치다. 금요일 급등 전 빅스는 2018년 2월 이후 가장 긴 190 거래일 연속으로 20 이하에서 마감한 바 있다. 빅스 지수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가 향후 30일 동안 얼마나 크게 오르내릴 거라 시장이 전망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통상 30이 넘으면 시장 불안도가 높다고 본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 놓은 다우존스 30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51% 내린 3만9737.26을 기록했다. 대형주 벤치마크인 S&P500지수도 1.84% 떨어진 5346.56를,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도 2.43% 빠진 1만6776.16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은 고점(7월 10일 1만8647.45) 대비 10% 이상 빠지며 조정장에 진입했다. S&P500과 다우지수도 고점 대비 각각 6%, 4% 빠졌다.
투자자들이 변동성 대비에 나선 것은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하락과 더불어 미국 제조업·고용 지표가 동반 하락하면서다.
AI 대표주인 엔비디아는 지난주 주간 기준으로 5.35% 하락해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어 올 4분기 중에 내놓기로 한 차세대 반도체 블랙웰에서 뒤늦게 설계 결함이 발견돼 양산이 내년으로 미뤄졌다고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이 보도하면서 추가 급락의 우려가 나온다.
인텔은 올해 2분기 매출이 1년 전 동기 대비 1% 줄었으며 순손익은 지난해와 같은 기간 14억8000만달러 순이익에서 16억1000만달러 순손실로 전환했다. 인텔은 실적 하락의 여파로 100억달러 비용 절감을 위해 전체 직원 15%가량을 감원하겠다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도 발표했다.
최근 미 거시경제 지표들도 경기 침체 우려를 부추겼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실업률은 4.3%로 전달(4.1%)보다 높아졌고, 전문가 예상치(4.1%)도 상회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이 집계한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8로 시장 예상치(48.8)보다 낮았다.
실업률과 PMI 등 거시경제 지표가 침체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제 때 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다는 ‘금리 인하 실기론’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금리 인하 폭을 늘리는 ‘빅컷’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날 때 연준이 너무 늦게 반응할 경우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JP모건의 경제학자들도 연준이 다음 두 차례 회의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블랙록의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인 릭 리더는 “금리가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며 “경제가 여전히 비교적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연준은 기준금리를 4%대로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런던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다이애나 아이오바넬은 “이번 주가가 경제적 대재앙을 가리키기엔 아직 멀었다”며 “미국 경기 침체로 인한 공포가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였지만, 주식 랠리를 방해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