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ARS 승인에도 판매자들 “자구안 현실성 없다”

티몬·위메프 피해자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인근에서 릴레이 우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을 통한 변제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신용회복 약속과 세금 감면 등 정부 대책이 더 시급합니다.”

법원이 ARS를 승인하면서 티메프(티몬·위메프)는 1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ARS는 법원이 기업이 신청한 회생 절차 개시를 일단 유예하고, 채권자와 변제 방안을 자유롭게 협의하도록 시간을 주는 제도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티메프가 내놓은 인수합병 등 자구안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11만명에 달하는 채권자들의 중지를 모으기도 쉽지 않아 협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판매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는 법원의 ARS 승인에 대해 “당장 결론을 내릴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법원이 시간을 준 것 같다”며 “티메프가 제시한 자구안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자구안은 모두 현실성이 없다”며 “당장 도산 위기에 빠진 판매자들은 ARS 프로그램보다 정부 지원이 더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구영배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합병을 통해 판매자들에게 지분 양도를,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알리·테무 등에 매각 등을 제시했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는 법원 심문에서도 아마존 등 투자 유치로 적자에서 벗어난 회사의 예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티메프는 ARS 승인으로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업계는 티메프가 처한 환경이 기존 ARS의 회생 성공사례와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김기홍·우상범 서울회생법원 판사가 4월 한국법학원 학술지에 낸 논문 ‘회생절차의 틀 안에서의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을 보면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서울회생법원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22건으로, 이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10건(45%)만 합의했다.

특히 김기홍·우상범 판사는 합의 성공사례 10건에 대한 성공 요인으로 채권자가 10명 미만 소수거나 신청 기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제조업, 또는 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일시적이거나 채권자가 ARS에 우호적인 상황, 그리고 신규 자금 조달 성공 등을 꼽았다.

티메프의 채권자는 11만명에 달한다. 특히 6만여 명에 달하는 판매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다른 판매자는 “당장 정부의 지원 문제를 놓고 봐도, 정부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받아서 파산을 면하자는 판매자와 이미 파산은 불가피하니 신용회복 약속 등 정부에 요청하자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고 전했다. 티메프 사태는 김기홍·우상범 예로 든 ‘채권자가 다수라도 주요 채권자가 소수인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판매자들은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백억원 대의 판매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 역시 일시적이지 않다.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에 인수되기 전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다. 인수 후에도 적자는 계속됐다. 티메프는 담보할 고정자산이 많은 제조업이 아닌 ‘이커머스’ 기업이다. 기간 내 신규 자금 조달 역시 쉽지 않다.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회사를 인수할 회사가 나타나기 어렵다. 실제 위메프가 알리·테무 등에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알리익스프레스는 “인수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자료를 냈다.

큐텐그룹 계열 국내 이커머스 중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인터파크커머스도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큐텐 그룹에서 벗어나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판매자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최근 인터파크쇼핑 홈페이지에서 운영 중이던 중소기업 온라인지원사업을 중단했다. 다만 영양제나 건강식품 등 중소기업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정기배송전용관’ 페이지는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중기유통센터에 따르면 정기배송 사업은 지난해까지 진행한 사업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인터파크가 일방적으로 배너를 내리지 않았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중기유통센터는 이에 대해 즉각 조치를 하고 책임을 묻기로 했다.

중기유통센터 관계자는 “인터파크커머스 온라인지원사업은 7월까지는 정산이 제대로 돼서 그대로 운영하다가 8월 이후 종료했다”며 “구독 서비스는 작년까지 진행하고 끝난 사업인데, 인터파크커머스에서 일방적으로 배너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해서 조치를 했고 이번 상황에 대해 강경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인터파크커머스에서 판매대금이 지연된 이후 롯데홈쇼핑과 GS샵·CJ온스타일 등 TV홈쇼핑사를 비롯해 AK플라자 등 주요 입점 판매사들이 판매를 중단했다. 이번에 정부 기관인 중기유통센터도 발을 빼면서 앞으로 판매자 이탈은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파크커머스는 독자적인 생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김벼리·박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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