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한 관광 가이드(가운데)가 확성기를 이용해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이탈리아 정부가 고소득 신규 거주자의 해외 소득에 대한 고정세를 2배 인상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내각회의를 열고 신규 거주자의 해외 수입에 대한 연간 고정세를 현행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에서 20만유로(약 3억원)로 인상하는 세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신규 거주자의 해외 소득이 얼마나 됐든 간에 매년 고정된 세금만 내도록 한 이 제도는 이탈리아 정부가 해외 부유층을 자국으로 유인하고 두뇌 유출을 막기 위해 2017년 도입했다.
이탈리아에 새롭게 거주하는 외국인 또는 해외에서 9년 이상 거주하다가 귀국한 이탈리아인에게 적용되는 이 제도는 최장 15년간 일률 과세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전 세계 억만장자들에게 인기 주거지로 떠올랐다.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2018∼2021년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뛴 것도 이 제도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탈리아 현지에선 해당 제도를 ‘축구 선수 제도’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고액 자산가들의 ‘조세 회피처’가 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금까지 사모펀드 임원, 재벌, 사업가 등 최소 2730명의 억만장자가 세금을 아끼기 위해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돈 많은 외지인이 밀려들면서 현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유층의 유입이 집중된 밀라노에서는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43% 올라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FT는 이탈리아 정부가 이번 고정세 인상으로 세수를 늘려 재정 적자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4%로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재정부 장관은 이날 내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고정세가 인상되긴 했지만, 여전히 고액 자산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인상이 지금부터 이탈리아에 새롭게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것이며 이미 거주한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르제티 장관은 다른 국가들과 세금 감면을 놓고 경쟁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경쟁이 시작되면 이탈리아처럼 재정 여력이 매우 제한적인 국가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감사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이 제도에 따라 거둬들인 세금이 2억5400만유로(약 381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조르제티 장관은 은행 수익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 없다며 정부가 은행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를 일축했다. 그는 “은행은 다른 영리 기업과 마찬가지로 공공 재정에 기여해야 하지만 은행의 추가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8월 은행의 초과 이익 중 40%를 횡재세로 걷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다른 EU 국가에서도 은행 횡재세 도입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면서 유럽 주요국 증시가 크게 휘청거렸다.
이탈리아발 유럽 경제 위기 우려마저 나오자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 철회를 권고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은행이 납부해야 할 세금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도록 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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