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줄다리기’하다 공익위원이 정하는 최저임금제도, 드디어 바꾼다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 개선에 본격 착수했다. 그동안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한 대립만 지속하다 결국엔 공익위원이 정하는 산식에 따라 표결로 결정하는 최저임금 제도를 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비교 가능한 6개국 이상의 최저임금 제도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제도적 장단점을 검토해 참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저임금제도 손본다…연구용역 공고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 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에 대한 국제 비교 분석’ 연구용역을 실시하기 위한 입찰 공고를 냈다. 공고에서 노동부는 “국가별 사회경제적 배경 차이로 최저임금 제도의 도입 경로와 결정 기준·방법상의 고유한 특성이 있으나, 관련 상세 자료가 부족하다”며 “주요국 최저임금 결정 사례를 조사하고 비교·분석해 우리나라 제도 운영에 참고할 자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연구를 마쳐 우리나라와 비교 가능한 6개국 이상의 최저임금 제도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제도적 장단점을 검토해 시사점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우리처럼 위원회 방식을 둔 국가는 일본·영국·멕시코 등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일반 법률처럼 국회가 최저임금을 정한다. 산별 교섭이 자리 잡은 독일은 단체협약으로 전체 노사의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전년 임금 상승률에 근거해 자동 조정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7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퇴장하고 있다. 이날 최저임금위는 노사 양측 최종안의 표결을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연합]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데 매년 최저임금 심의를 전후로 결정 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노사가 ‘흥정하듯’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가 어느 수준의 임금 인상(삭감)을 주장하고 양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만,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래 노사 합의는 일곱 번 뿐이다.

서로 수용할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노사가 제시한 요구안의 격차는 무려 20%포인트 이상(근로자 16.4~26.9%-사용자 -4.2~0%) 벌어졌다. 업종별로 임금 지급능력과 생산성이 다른데도 획일적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플랫폼 근로자 등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엔 공익위원이 합의를 위해 산식을 만들거나 활용해 최저임금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논의는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한 올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일 내년 최저임금액을 고시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저임금제도는 37년간의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됐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사 치고받는데 4년간 회의경비만 25억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0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 운영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오른쪽)과 사용자위원 운영위원인 류기정 경총 전무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연합]

노사가 각자 서로의 주장만 소모적으로 반복하다 결국에는 공익위원이 결정하는 방식인데도 적지 않은 혈세가 들어간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2021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회의경비와 사무국경비 예산으로 45억1900만원을 편성했다. 회의경비 예산은 4년간 34억5168억원, 사무국경비 예산은 10억6732만원이 각각 투입됐다. 예산 편성액 중 2021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실제 집행된 금액은 회의경비와 사무국경비가 각각 약 25억원, 약 7억2800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4년간 본회의와 분과위원회를 합쳐 총 93번의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1회당 약 2700만원의 회의경비가 소요된 셈이다.

적잖은 세금이 들어가지만, 회의 일정은 매년 제각각이다. 지난 2021년에는 본회의가 8번, 2022년에는 8번 열렸지만, 지난해는 이에 두 배인 15번이 열렸다. 올해 회의실적은 총 29회(본회의 11번)에 이르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최저임금 위원 구성이 완료된 5월이 되서야 시작됐다.

이 탓에 전문가들은 이번 최저임금제도 개편 과정에서 회의의 ‘틀’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정부가 객관적인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마련하고 독립위원회나 전문가그룹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지 여부는 미지수다. 21대 국회에서도 대통령 소속 기구로 최임위 성격을 변경하는 안을 비롯해 취임위 위원 구성·인선 제도 변경, 최저임금 결정 근거 공개, 지역 및 연령 구분 적용 등 31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이는 모두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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