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화 추진…“한국만 깜깜이”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량 들이 전소돼 있다. 전날 오전 6시 15분께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40여대가 불에 탔고, 100여대가 열손 및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인천 청라 한 아파트의 전기차 화재 사고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방침을 이미 정했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배터리법에 따라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전(全)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배터리 여권’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배터리 정보는 배터리팩에 부착된 라벨이나 QR코드를 통해 공개한다. 소비자는 홈페이지에서 배터리 정보를 확인가능하다.

미국에서도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ACC(Advanced Clean Car)Ⅱ 규정의 ‘배터리 라벨링’ 항목을 통해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준비하고나섰다.

ACCⅡ는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신차 중 무공해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의 연도별 비중을 명시하는 증명이다. 전기차의 사이드도어 등 소비자가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라벨을 부착하도록 한다.

국제기구에서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소비자 선택권’을 명시하는 추세다. 이를 통해 배터리 원산지나 제조회사의 출처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등 불공정한 표시로서 지양하도록 한다.

식별력이 낮은 상표 사용으로 화재, 폭발 등 사고가 발생한다면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전기차 제조사 외에는 배터리 제조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가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를 통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배터리 정보를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배터리 인증제는 제작사들이 전기차 배터리가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를 국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고 제작·판매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배터리 인증제와는 엄밀히 다르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추세다.

최근 화재가 난 벤츠 전기차 EQE의 경우 당초 중국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국토부 조사 등을 통해 글로벌 10위권 업체인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 탑재된 사실이 밝혔졌다. 파라시스 제품은 중국 내에서 2021년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이 이뤄지기도 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이력제를 도입해 배터리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어느 회사의 제품이 장착되는지 등을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차량 등록증에 제작사를 명시하고 배터리 고유 번호를 차대번호처럼 공개하는 등 생산부터 처리까지 모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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