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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대표가 비용을 아끼겠다고 에어컨을 꺼버렸어요. 한 사무실에 30명 정도 있는데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요. 직원들끼리 선풍기 전기료가 에어컨보다 더 나오겠다고 얘기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11일 서울 한 기업 직장인 류모씨(25)는 이렇게 호소했다.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가 권고에 그쳐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8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66조에 따르면 근로자가 폭염으로 열사병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가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 또, 야외 작업자와 같이 실내 작업자 역시 폭염특보 발령 시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쉴 것, 실내 작업장의 경우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장치를 설치하거나 주기적으로 환기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실제 사업장에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실내 근로자들은 사업주나 관리자 등이 에너지 절약, 전기요금 절감 등을 이유로 에어컨을 짧은 시간만 가동하거나 아예 꺼버려 근무에도 지장이 생길 정도라고 했다.
경기 북부의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40대 A씨는 "오후 2~4시 또는 1~4시만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며 "실내 온도는 이미 오전에 30도를 넘어서고 직원들은 두통을 호소한다. 에너지는 절약해야겠지만 지금은 기관 차원에서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름철 실내 온도 28도'만이라도 준수해주길 바랄 뿐"이라며 "내부적으로 아무리 요청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건 민원보다 회사"라고 토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경남 김해시 롯데글로벌로지스 김해마트통합센터에서 물류센터 온열질환 예방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물류센터 근로자들은 더욱 열악하다.
경기 여주시의 한 물류센터에서 4년째 물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모(56)씨는 "며칠 전에도 오후 2시쯤 관리자에게 '실내 온도가 33도로 찍혔는데 쉬는 시간을 왜 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체감온도로 계산했을 때 약간 모자라서 쉬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며 "어지러운데도 관리자들은 땡볕이 아니니깐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씨는 "여기는 창고라서 이동식 에어컨만 설치돼 있는데 그마저도 관리자 자리에만 있다"며 "열 피난처에 에어컨이 설치되긴 했지만 가서 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사람 수에 비해 공간이 턱없이 좁다"고 말했다.
여름철 적정 실내 온도는 26도가 권장된다. 공공기관은 일부 사정을 제외하고는 냉방설비 가동 시 실내 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규정돼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8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2천77명,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19명이다. 이중 실내 작업장, 건물 등 실내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448명으로 전체의 21.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온열질환은 주위 온도가 최소 30도 이상인 경우가 오래 지속될 때 발생할 수 있다"며 "야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실내의 경우 온도와 습도가 잘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업종별, 상황별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워낙 다양한 변수 상황들이 있어서 강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처벌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폭염 시 필요한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는 작업장 지침이 다양하지 않다 보니 사업장도 현실적으로 지침을 지키기 어렵다"며 "사업주에게도 설득력 있도록 직종, 업종, 상황별로 세부적인 지침을 개발해 보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현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전기요금을 아낀다거나 공공기관 성과 평가와 연관돼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 고충이 있다는 제보가 여름철이 되면 주기적으로 들어온다"며 "야외 노동자, 물류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무직 등에도 적용할 수 있는 (여름철 작업) 관련 규정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