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기업 전경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과도한 기업 공익재단에 대한 규제 탓에 민간기부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업 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상속·증여세법상 면세한도 상향 등 공익재단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88개 그룹 소속 219개 공익재단을 대상으로 ‘기업 공익법인 제도개선 과제 조사’ 결과, 기업 공익법인의 61.6%는 상속·증여세법,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기부금을 기반으로 한 기업재단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기업재단들은 민간기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규제 중에서 ▷상·증세법상 주식 면세한도(33.3%) ▷내부거래 의결·공시(22.9%)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18.8%)을 대표적인 규제로 꼽았다.
상·증세법상 면세한도는 의결권 있는 주식을 기업재단에 기부할 경우 재단은 발행주식총수의 5%까지만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면제 받는 규제다. 5%를 초과하면 최대 60%의 상증세를 납부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 제한은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갖더라도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임원의 선·해임이나 합병 등의 경우에만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상의 관계자는 “1991년 상·증세법에 엄격한 주식 면세한도를 도입한데 이어 2020년 공정거래법에 의결권 행사 금지를 도입하면서 기업재단에 대한 기부 유인이 양 법률에 의해 앞뒷문이 모두 막혀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상의 제공] |
선진국과 비교한 우리나라 기업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기업재단의 절반 이상(매우 낮음 3.8%, 다소 낮음 48.7%)은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지수 순위는 2013년 45위를 기록한 이래 2023년 79위로 떨어졌다.
기여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로는 53.7%가 ‘상증세 면세한도가 낮고 의결권 제한 등 규제가 엄격하고 중복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상의는 기부 선진국의 입법례를 보면 독일 등 EU 국가들은 기업재단 출연주식에 면세한도 없이 100% 면제하고 미국은 면세한도가 있지만 20%로 높다고 지적했다.
규제 개선과 관련해서는 현행 상증세법상 5%인 면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83%에 달했다. 완화 수준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제한과 정합성 위해 15%로 상향(28.2%)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EU처럼 면세한도 폐지(20.5%)하자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제한에 대해서는 ▷2022년 말 규제가 시행됐다는 점을 감안해 일정기간 경과 후 규제개선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견이 57.7%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 폐지(26.9%)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에 부족하므로 한도 상향(15.4%) 등의 순이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상증세법과 공정거래법을 함께 개선하기 어렵다면 현행 공정거래법을 통해 기업재단이 우회적 지배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만큼 상증세법상 면세한도를 완화해 기업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