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주요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연체액 규모가 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체가 지속되며 경매 시장에 나온 부동산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부동산의 임의 경매 신청는 11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결국 ‘백기’를 들고 있다는 얘기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이 금융 건전성에 독(毒)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부동산 상승 기대감에 ‘영끌’ 수요가 또 다시 늘어나면서 부실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주담대 연체액 규모는 1조877억원으로 2년 전인 2021년 상반기 말(5793억원)과 비교해 5347억원(87.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약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부실 규모가 늘어난 셈이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가 이뤄진 201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통상 대출 연체액 규모는 금리 수준에 따른 영향이 크다. 금리가 높게 형성될 경우,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빠른 속도의 주담대 금리 하락세가 나타나며, 부실 지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대 은행이 올 6월 취급한 주담대 평균 금리는 3.68%로 1년 전(4.47%)과 비교해 0.79%포인트 줄었다.
그러나 부실 지표는 여전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올 5월 기준 0.27%로 올해 들어서만 0.0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3년 전인 2021년 5월(0.11%)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4대 은행 주담대 연체액 규모 또한 1년 새 5000억원가량 늘어나며 6년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의 ATM기기가 설치돼 있다.[연합] |
은행은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주담대의 경우, 담보물 경매 신청을 통해 채권회수 조치를 취한다. 이에 따라 기타 신용대출 등에 비해 비교적 용이하게 부실채권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경매에 등장하는 부동산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은행권에서 집계되는 연체액 규모보다 더 많은 규모의 주담대가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 등)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총 1만377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9328건)과 비교해 47.6% 늘어난 규모로, 2013년 7월(1만4078건) 이후 약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원리금을 갚지 못할 때 채권자가 법원 경매에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집값 상승기에 무리하게 빚을 지고 주택을 사들였던 ‘영끌’ 차주들이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2018년 말 458조4285억원이었던 금융권 주담대 잔액은 ▷2019년 487조783억원 ▷2020년 526조4477억원 ▷2021년 560조4494억원 등으로 불과 3년 만에 100조원 이상 늘어난 바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 |
문제는 이같은 ‘영끌’ 현상의 부작용이 속속 현실화되는 가운데, 또 다시 주택 매수세에 불이 붙으며 주담대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은행 주담대 잔액은 26조5000억원가량 급증하며, 2021년 상반기(30조4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대출금리가 줄어들며 주택거래가 늘어난 데다, 정책대출 공급이 지속된 결과다.
일각에서는 향후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 부실 가능성이 점차 완화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향후 금융시장 변동성에 따라 ‘영끌’ 부작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전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대출을 받았던 차주들의 경우 금리 갱신 주기에 따라 이자 부담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초저금리 시기와 비교해 여전히 대출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
통상 5년 고정 후 금리가 갱신되는 국내 고정형 주담대 특성상, 2019년~2021년 차주들의 금리 갱신 시기가 이제 막 도래했다. 금리 수준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을 경우, 당시 100조원 규모로 늘어난 주담대 상환 부담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잔액 기준 국내은행 주담대 고정형 금리는 5월 기준 3.75%로 2015년 1월(3.78%) 이후 9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은행권에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등 정책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높아질 경우, 금리 갱신 주기가 도래한 기존 저금리 차주들의 부담이 더 커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영끌’로 인한 정책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 금리 인상의 경우 부작용을 감수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향후 예정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강화 등의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