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출신 디자이너 다이애나 푸트리가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세계적인 팝스타 블랙핑크, 레이디 가가, 아리아나 그란데, 자넷 잭슨, 니키 미나즈 등 주류 팝 시장의 ‘아이콘’들과 협업했다. 신보경 CP |
“2022년 2월이었어요. 그룹 블랙핑크의 스타일리스트에게서 새 앨범 뮤직비디오 의상을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인도네시아 출신 다이애나 푸트리는 ‘스타들의 디자이너’다.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 아리아나 그란데, 자넷 잭슨, 니키 미나즈…. 주류 팝 시장의 ‘아이콘’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전 언제나 블랙핑크 같은 강인한 여성들에게 영감을 받아요. 사실 블랙핑크, 그란데 같은 스타들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죠. 제 의상이 그들 내면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다시 그들에게 강인한 자신감을 심어주길 바라요. 여기에 여성의 인권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최근 한국을 찾은 푸트리는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블랙핑크와 첫 협업을 떠올리며 “네 명의 ‘소녀’에게 딱 맞는 의상을 제작해 주고 싶었지만 그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5일 뿐”이라고 회상했다.
모두가 그를 찾는다 “블랙핑크 제니, 최고 파트너”
푸트리가 YG엔터테인먼트의 연락을 받은 것은 블랙핑크가 두 번째 정규 앨범 ‘본 핑크(BORN PINK)’를 준비할 때였다. YG는 그에게 이 앨범의 재킷 촬영을 위한 의상 작업을 제안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는 브랜드 다이애나 쿠튀르 쇼룸에서 블랙핑크에게 딱 맞는 의상을 골랐다. 블랙핑크의 세 멤버 지수·로제·리사를 위한 옷이었다. 한국으로 세 벌의 의상을 보내는 데 걸린 시간은 3일. 세 사람은 다이애나 쿠튀르의 스와로브스키가 장식된 하이 웨이스트 반바지를 입고 앨범 재킷을 촬영했다.
이들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K-팝에 있어 의상·메이크업·헤어를 아우르는 스타일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노래·안무와 함께 K-팝을 규정하는 중요한 한 축이 바로 스타일이다 보니 K-팝 제작자들과 아티스트는 스타일링에 음악의 메시지와 가수의 정체성을 담아내려 한다. 푸트리는 블랙핑크의 방향성과 콘셉트를 온전히 이해했다.
블랙핑크의 ‘본 핑크’ 앨범이 나온 2022년 9월은 소위 ‘걸그룹 대전’이 치열했던 때였다. 블랙핑크의 후배들인 4세대 K-팝 그룹 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엔믹스가 등장해 4파전을 형성했다. 이때 블랙핑크는 ‘K-팝 여왕’의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타자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치명적 독을 품은 블랙핑크는 우아하면서도 공격적이었다.
“블랙핑크의 네 멤버는 같은 그룹에 있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니는 세련된 할리우드 스타일, 로제는 유쾌하면서도 록 스타의 면모를 가졌죠. 가장 한국적인 지수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이미지, 리사는 도시적인 스타일이에요.”
푸트리는 “블랙핑크를 비롯해 제 옷을 입는 여성들을 더 멋지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이들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의 강인한 힘을 드러내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것이 내 의상에 담고 싶은 메시지”라고 했다.
먼저 세 사람의 재킷 촬영 의상으로 블랙핑크와 호흡을 맞춘 푸트리는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셧 다운(SHUT DOWN)’ 뮤직비디오에서 제니에게도 자신의 의상을 입혔다. 진주로 빼곡하게 수놓은 코르셋 스타일의 의상이다. 블랙핑크는 푸트리와 함께 작업한 이 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과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톱100에서 동시에 1위에 올랐다. 두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K-팝 그룹은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 뿐이다.
블랙핑크는 푸트리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K-팝 스타였다. 이후 역시 2022년 그룹 2NE1(투애니원) 멤버 민지의 미국 불칸 매거진 촬영을 함께하며 K-팝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아졌다.
블랙핑크 외에도 많은 스타가 그와 인연을 맺었다. 그란데는 푸트리가 가장 처음으로 작업했던 팝스타다. 2018년이 첫 만남이었다. 그는 “당시 일주일 동안 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0단계부터 모든 것을 제작했다”고 돌아봤다. 가수들과 작업에 어려운 것은 이들의 콘셉트 방향성이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이다. 푸트리가 함께 한 작업은 2018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의 ‘갓 이즈 어 우먼(GOD IS A WOMAN)’ 무대였다.
푸트리는 “시상식에서 그란데는 ‘최후의 만찬’을 모티브로 삼아 무대를 꾸몄다. 그를 성모 마리아처럼 보이도록 미학적 요소를 담았다”며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여성의 인권 신장을 바라는 그란데의 마음과 의지를 의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스타들과 작업한 푸트리는 자신의 의상을 가장 잘 소화하는 사람으로 제니와 그란데를 꼽는다. 특히 그는 제니에 대해 “제니는 의상도 잘 소화하지만 일하기 편한 스타”라며 “디자이너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주고, 디자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아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화려한 의상에 담아낸 여성의 이야기”
지금이야 세계적인 스타가 먼저 찾는 디자이너지만, 그는 꽤 늦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았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을 뿐 패션 전공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그가 디자이너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그의 나이 서른 여덟 살 때였다.
디자이너로서 갈망이 커진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푸트리는 “어릴 때부터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았다”며 “나의 성격과 이미지에 맞춰 예쁘게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하고 싶었지만, 그의 입맛과 눈높이에 딱 맞는 의상과 소품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패션에 대한 지독한 갈증은 푸트리가 자신의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는 길로 이끌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스타일로 무장한 푸트리는 인도네시아 사교계의 ‘인플루언서’로 순식간에 발돋움했다. 알음알음 푸트리에게 자신의 의상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가 디자이너로 첫 발을 딛자 금세 입소문이 났다. 다이애나 쿠튀르를 설립한 뒤 ‘사교계의 여왕’들은 모두 그의 드레스를 입었다.
푸트리가 의상 한 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다. 그의 모든 의상은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뛰어난 손기술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복잡한 자수를 수놓는다. 그 위로 크리스탈·스와로브스키 같은 보석류가 섬세하게 자리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의상을 만들래야 만들 수 없다. 푸트리가 그란데와 작업할 당시 수면 시간을 극도로 줄인 이유는 한 벌만 만드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는 의상을 두 벌이나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인도네시아 셀럽들의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지만, 그때에도 푸트리는 자신의 의상을 ‘브랜드화’ 하지 않았다. 그의 작업은 오직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맞춰졌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2015년 9월 ‘뉴욕 패션위크 SS 2016’ 무대에 서면서다. 푸트리는 “뉴욕 패션위크는 디자이너로서 내 삶의 변곡점”이라며 “컬렉션을 연다는 것을 처음엔 망설였지만, 확신을 얻은 이후엔 빠르게 추진했다”고 회상했다. 컬렉션은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신화 속의 새에서 영감을 얻은 ‘가루다’를 주제로 했다.
느리게 수놓는 인간의 손길에 현대적 기술이 더해지고,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요소가 유연하게 어우러지자 그는 뉴욕 패션위크의 최고 스타가 됐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푸트리 의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푸트리는 무려 10년간 수여되지 않았던 ‘최고의 디자이너’ 상을 받았다. 그는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자, 아시아 디자이너였다.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불과 5년 만에 거둔 성과다.
‘개인 맞춤형’인 푸트리의 의상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다. 그의 의상이 유독 화려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푸트리의 의상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을 만나 빛이 난다. 이 안에는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들이 새겨진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으로 인도네시아의 건국 이념인 판차실라의 다섯 가지 원칙(신앙의 존중, 인간의 존엄성, 통일과 단합, 대의정치, 사회정의 구현)과 여성 인권 강화를 위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푸트리가 그의 의상에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성장하며 마주해온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가부장적인 사회로 여성이 직장 생활을 하고, 비즈니스 우먼으로 서기엔 무척 힘든 환경”이라고 했다.
“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항상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를 존경하며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전 항상 여성스럽고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여성들에게 영감을 받게 되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의상으로 담고자 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역시 오뚝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는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가족과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 삶의 원동력이자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것의 저의 삶이었어요. 인생엔 크고 작은 굴곡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다음 스텝, 또 그 다음 스텝을 밟았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죠. 패션은 저의 운명이에요. 그래서 기꺼이 이 운명을 따라가고 있어요.” 고승희 기자